전쟁을 일으킨 식물-Ⅰ

영국 황실에서 1630년대부터 차를 즐긴 영국인들은 중국의 차 맛에 길들여져 중국차 없이는 살 수 없었다. 19세기 초에 중국차를 마시는 찻값으로 내는 영국 은이 청나라로 솔솔 흘러 들어가서 무역 적자가 나게 되자 영국은 양귀비에서 뽑은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하여 무역을 흑자로 되돌렸다. 차와 아편의 만남은 ‘중독과 중독’의 만남이기도 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차를 즐기게 되자 중국의 입장에서 차는 자원이 되었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에게는 고가의 사치품이 되었다. 그 와중에 두 차례의 전쟁까지 벌어졌다.

영국이 미국에 대한 차에 붙인 과도한 세금 요구에 차를 바다에 던져 넣는 ‘보스턴 차사건(Boston Tea Party)’을 유발시켰고, 영국의 강압에 대응하여 미국인들은 혁명정부를 구성하고 1775년에 독립전쟁을 일으켜 마침내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미국의 독립전쟁이 그 하나이고 영국과 중국 사이의 아편전쟁(1840년)이 또 다른 하나였다.

아편전쟁 패배한 이 시기에 중국의 차나무는 포르투갈에 전파된다. 포르투갈인은 중국 농민 300여 명을 모집하여 포르투갈로 데려가 중국의 차나무를 심었다. 또한 인도과학회에서 중국의 차나무를 심기로 결정한 후 중국의 차나무 4만 2000여 주를 심어 오늘날의 포르투칼과 인도 차의 시초가 되니 결국은 차와 아편전쟁의 결과이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