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추경화 씨 영남루 보다 역사적 의미가 더 높은 촉석루의 국보환원운동 시작

-촉석루 중건당시 설계도와 국무회의록 공개.

▲ 진주향토사학자 추경화씨가 공개한 1957년 국무회의록과 일제강정기 때 제작된 촉석루 중건 당시의 옛 설계도.
▲ 진주향토사학자 추경화씨가 공개한 1957년 국무회의록과 일제강정기 때 제작된 촉석루 중건 당시의 옛 설계도.

 

지난 2023년 12월28일 보물147호 밀양 영남루가 60년 만에 국보로 재지정 되었다.

영남루는 1933년 일제 강점기에 보물로 지정됐다가 해방 후인 1955년에는 국보로 승격돼 관리됐다. 그러다 1962년 1월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를 재평가하면서 다시 보물로 등급을 내려 관리되어 왔다.

 

영남루를 국보로 재지정한 이유는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 조형미와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밀양시는 영남루가 국보로 지정된 계기를 시작으로 밀양 관아지와 읍성 등 주변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정비 계획을 수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때에 진주지역에서 평생을 문화재 복원운동을 전개해 온 향토사학자는 추경화 씨가 영남루 보다 역사적 의미가 더 높은 촉석루의 국보환원운동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향토사학자 추경화씨는 지난 10여년 전 2013년 7월에 발견하여 언론에 공개한 촉석루 중건 당시인 1957년 1월 19일 개최된 ‘제6회 국무회의록’ 내용과 ‘촉석루 중건 설계도’가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촉석루 중건 당시에도 촉석루 아래 돌기둥 바닥의 기초석과 석문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국무회의록에 의하면 ‘촉석루 보수 관계’라고 명시돼 있고 당시 경남도지사와 주무 장관인 문교부장관이 보수관계로 상신하기 위한 국무회의록에도 역시 보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지난번에 문화재청에서 밝힌 촉석루 국보지정이 불가한 이유로 「숭례문은 설계도가 있으나 촉석루는 설계도가 없어 국보환원 또는 보물지정이 안 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을뿐 만아니라 이로써 문화재청은 더 이상 촉석루의 국보 지정을 미룰 이유가 없음으로 하루 빨리 재지정을 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촉석루 아래 돌기둥 바닥의 기초석은 분명히 원형 그대로이고, 의암바위로 가는 쪽 석문과 인력으로 쪼아 댄 벽면, 돌계단, 물이 흐르도록 만든 사각 바닥 등이 보통사람이 봐도 옛 자취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다는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 따라서 원형이 없고 설계도가 없어서 국보환원이 안된다는 문화재청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 셈이다.

추경화 씨는 촉석루의 기초석과 석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설계도가 발견된데 이어 중건 당시 정부도 촉석루 ‘보수’라고 표기한 문서가 발견된 이상 더 이상 촉석루의 국보환원을 미루면 안된다. 문화재청은 하루빨리 전국 3대 누각 중 최고로 평가받는 영남의 명승지이자 서부경남의 자존심인 촉석루에 대한 국보환원 심사작업에 들어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선임기자 류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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