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민들레(15)

논개가 선학산을 다 내려와 동네로 들어섰을 때다. 지게를 진 어른들이 옆으로 지나가다가 혀를 내둘렀다.

“하이구, 저 아 좀 보래! 힘이 장사네! 열 살인가 열한 살인가 묵었다카더만 여편네 나뭇짐을 해 이고 오네! 얼굴이 나뭇짐에 파묻히서 뵈지를 안쿠만.”

“저거 옴마가 펫벵이라 카더마는 저 어린거이 쌩고생을 하네.”

논개는 그 어른들이 누구인지 머리를 짓누르는 나뭇짐 때문에 인사를 할 수도 쳐다볼 수도 없었다. 실제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행여 마음을 놓으면 길바닥에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악으로 버티며 걷고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집에 닿아 정짓간 구석에 나무를 부려 놓고, 논개는 기어이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목을 펼 수가 없었다. 옆으로 돌릴 수도 앞으로 숙일 수도 없었다. 논개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고 위로 빼듯 솟구어 보기도 하고 옆으로 돌려도 본다. 그러다가 킥킥 웃었다.

“논개가?”

방 안에서 오매가 기척을 들은 듯 가녀린 음성으로 물어 왔다. 부엌 바닥에 퍼질러 앉았어도 신경을 방 쪽으로 쏟고 있었기에 그나마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오매의 음성은 작고 가늘었다.

논개가 벌떡 일어나 치마를 털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침에 오매의 머리맡에 두고 간 죽 그릇을 우선 살펴본다. 다행히 그릇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논개는 활짝 웃는 얼굴이 되어 오매를 내려다 본다.

“옴마, 선학산에 가서 나무 좀 해 왔다.!”

“나무를 ? 벌써 다 땠더나!”

“어지께 약 대린다꼬 좀 많이 땠거덩. 산에 간께 깔비가 많더라! 옴마 약 뎁히 주고 죽 꿇이 놓고 한 번 더 갔다 올라 칸다.”“약 뎁혀서, 니도 묵으라. 기운을 채리야, 낭구를 하제.”

“나는 배미를 고우면서 냄새를 억시기 맡아서 그란지 비우가 상하는 기라. 그라고 약을 둘이 먹으모 약발이 안 선다 카더라. 내가 묵고 싶으모, 음산에 배미가 지천인데 또 잡아서 끼리 묵제. 참, 옴마. 이거 찔레순이다. 묵어 봐라. 산에 지천으로 피었더라!”

논개는 옷고름에 동여맸던 찔레순을 풀어내어 껍질을 벗겨서 오매에게 건넨다.

“니나 묵으라.”

“나는 배터지게 묵었다. 약 뎁히 오께.”

논개는 다시 방 밖으로 나간다. 그녀는 왠지 눈물이 쏙 빠질 것 같아서 고개를 쳐들고 두 눈을 끔벅거렸다. 컴컴하고 차디찬 방 안에 뼛가죽만 남은 얼굴로 움푹 팬 큰 눈만 굴리며 마치 해골처럼 누워 있는 오매가 그지없이 불쌍하고 또한 두렵고 무섭기도 했기 때문이다. 논개는 손바닥으로 눈언저리를 두어 번 누르곤 정짓간으로 내려가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구멍 난 솥 바닥을 땜질한다. 그리고 쌀과 보리쌀 각각 한줌씩을 솥에 넣고 물을 세 바가지나 붓고 불을 지폈다. 죽이 끓기 시작하면 배추 뿌리와 질경이를 넣고 한숨 더 끓이면서 뱀탕을 뚝배기에 담아 그릇째로 솥에 넣어 덥힐 생각이었다. 죽을 끓이면서 약도 덥히기 위해서다. 금방 산에서 긁어 온 마른 솔잎은 불살도 세고 잘 탔다.

솥의 죽이 바글바글 끓을 즈음이었다. 뜻밖에 강 진사 댁의 늙은 여자 종이 찾아왔다. 나이가 오십으로 강 진사 댁 여종 중에 가장 늙은이였다. 아들도 며느리도 손자도 3대가 그 집 종살이를 하는, 강 진사 댁의 집지킴이 노비가 뜻밖에 찾아온 것이다. 논개가 불을 때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너거 옴마, 많이 아푸나?”

“야아.”

여자가 손에 들고 왔던 검정 보퉁이를 논개에게 내밀었다.

“어지께 너 오매 품값이다. 아파서 몬 받고 기냥 가 삐리서 내가 갖고 온 기다. 보리를 좀 넉넉히 담았다.”

논개는 꽤나 두툼한 보퉁이를 두 손으로 받아 들면서“고맙습니더.” 한다.

“솥에 밥하나?”

“죽 끼립니더.”

그 노비가 논개의 아래위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물었다.
“방에 좀 들어가입시더.”

“오냐, 왔인께 너거 어무이는 좀 보고 가야제.”

노비가 방 안으로 들어가고, 논개는 아궁이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불길을 얼른 안으로 밀어 넣고는 불기를 죽인다. 그리고 뚝배기에다 옹기솥의 뱀탕을 퍼 담아 죽이 끓는 솥 안에 넣고 덥힌다.

“저 할매가 와 왔을꼬? 강 진사 댁 사람들이 오매 아프다고 쫓아 보낸 기 안돼서 품삯 챙기 주러 온 긴가?”

논개는 부지깽이로 불을 다독이면서 중얼거린다. 강 진사 댁의 여자 종들 중에서 대장이나 다름없는 노비가 보리 서너 됫박을 갖다주기 위해서만 자기 집에 들른 것 같지는 않았으나, 어쨌거나 찾아 주는 사람 없는 집에 와 준 것은 고맙게 여겨졌다. 무엇이든 먹을 것을 대접하고 싶었으나 아무것도 없어 나물죽이라도 한 그릇 떠 올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논개는 솥뚜껑을 열고 따끈하게 덥혀진 뱀탕 뚝배기를 꺼내 사기그릇에 옮겨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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