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관련 베트남
북미회담 관련 베트남
  • 경남연합신문
  • 승인 2019.0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많이 뜨거워지고 있다.

박항서 베트남축구 국가대표팀감독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이는 한류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감독과 이름이 비슷한 음료 박카스가 작년4개월 동안 280만개가 팔렸다는 사실로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북미정상회담개최지가 하노이로 결정되면서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우리와 과거부터 긴밀한 연관성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베트남에 대해 기획해 보았다.

 

개요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의 동쪽에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3310ha로 남한면적(1000ha)3.3배정도이고 남북한 총면적(2200ha)1.5배 정도이다.

인구는 9743만 명으로 한국(5180만 명)보다 두 배가 조금 못되고, 국민의 80%가 불교를 믿는다.

공식국가명은 베트남사회주의 공화국이고 수도는 북쪽에 위치한 하노이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이 늦다. 즉 한국이 오후4시일 때 베트남은 오후2시이다.

GDP(국내총생산)2239억 달러로 세계46위이다. (한국은 15300억 달러로 12)

 

역사

우리나라가 중국의 동쪽에 위치함으로서 중국과 역사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듯이 베트남은 중국의 남쪽에 인접하여 위치함으로서 중국과 불가분의 역사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과의 역사

베트남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치며 BC206년에 양쯔강 남쪽부터 지금의 베트남중부까지 포괄하는 남비엣(Nam Viet)국이 세워졌다. 이때 중국은 진시황의 폭정에 못 견뎌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인 후에 한나라가 통일을 하고 유방이 한고조가 되는 시기이다. BC1117대 황제 한무제는 남비엣을 멸망시키고 이후 당나라 때까지 1000년간 중국의 영향력아래 지배하게 된다.

그동안에 베트남인들의 독립을 위한 봉기는 계속 이어졌고 결국 당 멸망 시기를 틈타 중국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3차례의 몽골침략이 있었지만 모두 물리쳤고, 1400년대에 명나라에 20여 년간 다시 지배당했지만 거국적 저항운동으로 마침내 중국인들을 몰아내고 독립하였다.

베트남의 고대 역사 속에서 중국과의 지배와 저항 독립의 과정은 우리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험난한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지배

16세기이후 유럽 여러 나라들은 제국주의정책을 펼쳤는데 동남아에서 영국은 인도 미얀마 말레이지아를 식민지로 삼았고, 스페인은 필리핀을(나중에 미국이 다시 빼앗는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점령했다. 프랑스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차지하게 되고 베트남은 결국 1883년부터 1945년까지 60년 넘게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다.

유럽열강들이 이처럼 동남아를 식민지로 삼은 이유는 중국, 한국, 일본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고

풍부한 자원과 함께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귀한 향신료가 많았기 때문이다.

 

호치민과 프랑스독립전쟁

베트남은 프랑스 점령 하에서 계속 독립운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유학자를 중심으로 민족운동을, 이후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힘을 키우고자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독립을 약속받았지만 프랑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호치민은 공산당으로서 1941년부터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19452차 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베트남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게 되고, 혁명을 통해 북베트남을 세웠다.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지배하려고 들어오고 9년간의 전쟁 끝에 1954년에 프랑스를 쫓아냈다. 호치민은 1945년부터 1969년 사망할 때까지 북베트남 주석을 지냈다.

 

베트남전쟁

프랑스가 물러난 이후 제네바협정에 따라 북위17도를 경계로 소련이 지원하고 호치민이 이끄는 북베트남과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으로 분할되었다.

제네바협정은 남북베트남을 하나의 정부아래 통합할 목적으로 베트남전역에 걸쳐 자유선거를 실시하고자 했으나 남베트남의 지도자 디엠은 패배를 우려하여 선거를 거부하고 이를 구실로 북베트남은 전쟁을 일으킨다.(1955-1975)

미국은 인도차이나반도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고자 하였고 통킹만에서 북베트남으로부터 공격받은 것으로 조작하여 이를 계기로 삼았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를 받는 북베트남정규군과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 베트콩에 대항하여 미국은 40만 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한국, 호주, 필리핀 등 연합군을 모집해서 전쟁을 수행했다.

연합군의 우세한 화력을 통한 대규모공습에 반해 베트콩은 굴을 파고 숲속에서 매복 기습공격에 의존하였다. 연합군은 베트콩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마을주민을 베트콩으로 오인하거나 고엽제를 뿌리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전쟁의 참상이 신문과 방송으로 알려지면서 반전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고 미국은 결국 북베트남과 평화협정을 맺고 1973년 미군병력은 철수한다.

정전협정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대규모공세에 남베트남은 무너지고 197672일 베트남은 하노이를 수도로 하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일되었으며 사이공은 호치민시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산업은 국유화되었고, 농업은 집단농장체제로 바뀌게 된다. 베트남이 공산화됨에 따라 이웃나라인 라오스 캄보디아도 차례로 공산화 되었고, 이들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배를 타고 탈출하였는데 이들을 보트피플이라고 한다.

류재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로305번길 3 2층 경남연합신문
  • 대표전화 : 762-7800
  • 팩스 : 763-7800
  • 광고국 : 761-5388
  • 편집국 : 753-5050
  • 관리국 : 759-1267
  • 구독신청 : 759-3350
  • 명칭 : 인터넷신문
  • 제호 : 경남연합신문
  • 등록일 : 2017년 09월 14일
  • 등록번호 : 경남 다-01530
  • 창간 : 2017년 11월 01일
  • 발행인·편집인 : 대표이사 회장 김진수
  • 사장 : 서영철
  • 인쇄인 : 조규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수
  • 경남연합신문본지는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경남연합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경남연합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j7627800@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