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민들레(20)

소설가 김지연

“그려, 백정 종놈이라고 사람들이 천대해도, 그래도 인심은 젤 좋은 사람인 기라!”

논개가 할매 앞에 고개를 숙이며 목이 잠겨 인사한다.

“고맙습니더, 할매. 은혜, 안 잊어 뿌릴 낍니더.”

“고맙기는 머가? 동네 할매가 할 일을 한 거뿐인데. 어히구, 불쌍한 것, 니가 무슨 죄가 있노, 쯔쯔. 그란데, 니 낮에부터 아무것도 안 묵었제? 돌아댕기느라고 내가 그거를 몬 챙깄네.”

“안 묵고 싶어예….”

“그라모 안 된다. 손까락이 빨리 붙을라 카모 묵기 싫어도 묵어야 한다.”

“갠찮십니더.”

“안 갠찮은 기라. 가마이 있거라. 내가 정지에 나가 볼게.”

섭냄이가 논개의 말을 가로채며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솥에 죽이 있는데, 할매도 저녁 안 잡샀지예?”

섭냄이가 밖에서 소리쳤다.

“나는 집에 가서 묵었다. 논개나 좀 갖다조라.”

논개는 일어나 정짓간으로 나갔다. 그리고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 섭냄이가 퍼 주는 식은 죽을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닭똥 같은 눈물이 죽 그릇에 후드득 떨어졌다. 할매와 섭냄이와 할매의 아들 송달이 아버지와 백정이 아재가 고마워서였다. 논개 자기가 살아 있는 한 은혜를 갚으리라 속으로 다짐한다.

희부연 새벽녘에 송달이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백정이가 괭이와 삽을 메고 논개 집으로 왔다. 밤을 지샌 할매와 섭냄이가 반색을 하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오매의 시신은 할매에 의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져서 삼베 홑이불로 이미 염을 해 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일은 많지 않았다. 송달이 아버지는 관 대신 가마니 조각에다 시체를 한 번 더 말 듯이 싸서 지게에 얹었다.

“선학산 암반태기 옆에 묻을 곳이 많십니더.”

백정이 말하면서 앞장서고 송달이 아버지가 시체를 얹은 지게를 지고 뒤따랐다. 섭냄이가 연신 훌쩍거리며 뒤따르고 논개는 정짓간 대살강 위에서 오매의 밥사발 한 개와 놋숟갈 하나를 움켜쥔 채 지게 뒤를 따랐다.

“쯔쯔쯔, 이렇기 떠들어싸도 창기 아배 오매는 코빼기도 안 지치네. 참말로 몹쓸 인심이다.”

일행을 재촉하며 논개의 셋방을 벗어나던 할매가 안집 쪽을 돌아보고 이죽거렸다.

오매의 시체는, 동네를 가로질러 골짜기 백정이네 집 앞을 거쳐 선학산 암반태기 쪽으로 갔다. 이른 새벽이어서 길에서 동네 사람들을 정면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우물에 물 길으러 가던 아낙 두어 사람이 영장 지게를 보고 고샅으로 숨어 버렸다.

백정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선학산 동남쪽 방향의 암반태기 옆으로 아늑하고 완만한 구릉이 있었다. 그곳은 양옆의 돌출한 둔덕으로 인하여 바람도 세지 않을 것 같고, 수목들이 많지 않아 햇살도 잘 들 것 같은 곳이었다.

송달이 아버지와 백정이는 지게에서 시체를 내려놓고 괭이와 삽으로 딸을 파기 시작했다. 힘이 좋은 두 장골壯骨의 팔놀림으로 금방 깊은 구덩이가 파졌고, 삼베와 가마니에 둘둘 말린 오매의 시체는 두 남자에게 들려서 구덩이로 넣어졌다.

“옴마아, 옴마아아.”

논개가 털썩 흙바닥에 주저앉아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면서 짐승 소리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섭냄이도 소리 내어 울었다. 점백이 할매도 치맛귀로 눈물을 찍어 내고, 두 장정은 시체 위에 흙을 덮으려다 말고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논개야! 옴마 극락으로 잘 가게 해 조야제. 자, 울음 뚝 그치거라. 그래, 이 밥사발하고 숟가락 너 오매 저승에 가서 밥 받어 묵으라고 갖고 온 모양이구나. 자, 구덩이에 넣었다. 일어나거라.”

울부짖는 논개를 끌어내며 달래자, 이어 흙무더기가 빠르게 구덩이 속을 메웠다. 두 남자의 손놀림이 여간 빠르지 않았다.

“할매, 우리 옴마 숨이 막힐 끼라예. 널이 있었으모, 흙이 맞바로 옴마 얼굴을 덮지는 않을 낀데. 할매, 할매애.”

논개가 할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몸부림을 치며 통곡했다.

“너 오매는 불써 숨이 넘어갔기 땜에, 그런 거 저런 거 모린다. 사람은 죽으모 다 흙이 되는 기라. 널이 없는 것이 흙이 되는 데는 더 좋은 기라. 뚝 울음 그치거라. 이라모 니 오매 맘 놓고 극락 몬 간다.”

논개의 울음은 조금씩 잦아지고, 어느새 작은 봉분이 만들어졌다. 원형의 모양새 좋은 봉분이라기보다 곡물 저장 구덩이 위의 흙더미 같은 작은 무덤이 만들어졌다. 오른쪽 중봉 부근에서 산새 울음소리가 자지러졌다. 때맞춰 작은 봉분 위로 아침 햇살이 수줍은 듯 부서져 내렸다. 아름다운 산새 울음과 동녘 산봉우리 위로 불쑥 솟아오른 태양과 첫 햇살이 마치 무슨 암시라도 하듯 봉분 위로 동시에 쏟아지자 논개는 잠시 하늘을 쳐다본다. 우연일 수도 있는 현상이었지만 논개는 그것이 상서로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논개야, 다 됐다. 인자 절하거라.”

할매가 말했다. 논개가 무덤 앞에서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을 했다. 할매가 두 손을 모으고 “논개 오매, 이승 생각 말고 극락 좋은 곳에 잘 가라.” 하고 소리쳐 기원했다.

“불써 해가 하늘 똥구멍에 솟았다. 얼렁 내리가서 밥 묵고 밭에 나가야제.”

송달이 아버지가 지게를 챙기면서 말했다. 백정이도 사방을 둘러보고는, “여가 맹당자린 기라!” 하며 벙글거렸다.

논개가 송달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어 반절을 하며 살펴주신 은혜 잊지 않겠다고 하고, 이어 백정이에게도 절을 하려 했다.

그러나 백정이가 엎드리는 논개를 붙잡으면서 “백정놈한테 절하모 안 되는 기라.” 했다.

논개가 백정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그런 말씸 마이소, 사람은 다 똑같은 기라예. 고맙습니더, 아재….”

논개는 한사코 말리는 백정이를 기어이 뿌리치고는 송달이 아버지에게와 마찬가지로 공손하게 반절을 한다. 점백이 할매와 송달이 아버지가 놀란 얼굴을 했다. 천한 백정을 보고 사람은 다 똑같다고 말하는 논개의 당돌한 소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자 중 누구도 논개의 말을 면전에서 탓하지는 않았다.

백정은 민망스러운 듯 그러나 기분 나쁘지 않은 얼굴을 하고는 “나중에 내가 봉분도 더 높이고 떼도 입히 줄 텐께….”했다.

“아입니더. 떼는 지가 입힐 끼라예. 그라고 지가 나중에 커서 할매랑 아재들한테 술하고 밥하고 꼭 대접할 낍니더. 오늘은 참말로 죄송합니더.”

점백이 할매가 논개의 어깨를 두드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늘거이맨키로 인사도 깍듯하구나! 논개가 이리도 야물고 철든 아인 거를 내가 이번에사 똑똑히 알았다. 갠찮다. 그래 니 말대로 커서 잘살모 오늘 이 아재들 잊지 말거라. 인자 내리가자.”

할매가 논개의 어깨를 잡았다.

“야, 절대로 안 일잊을 낍니더.”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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