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고사성어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슬플 측(⺖/9) 숨을 은(阝/14) 갈 지(丿/3) 마음 심(心/0)]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 인해 악하게 된다. 孟子(맹자)의 性善說(성선설)이다.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선한 본성을 갖고 태어나기에 남의 고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그것이 仁義禮智(인의예지)의 근본을 이루는 四端(사단)이란 이야기다. 이에 반해

荀子(순자)는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하며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그대로 두면 파멸하기 때문에 禮(예)로써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대조적이다.

맹자는 누구나 남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며 재미있는 어린아이와 우물 이야기를 예로 든다. 公孫丑(공손추) 상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게 된다. (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견유자장입어정 개유출척측은지심). 怵은 두려워할 출, 惕은 두려워할 척.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자 공손추에게 문답을 통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강조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측은지심 인지단야 수오지심 의지단야 사양지심 예지단야 시비지심 지지단야).’

이 세상에 처음 오는 어린애의 성품이 성선인지 성악인지 측정할 수는 없다. 연쇄살인마나 강간 살인범같이 이 세상에 해악만 끼치는 사람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진이나 화재, 수해의 재난을 입은 이재민들, 끝없는 행렬의 난민들에게 국가가 나서기 전에 일반 시민들이 줄이어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볼 때는 선하게 태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 그 반대도 성립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가게 됐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 또는 죄가 큰지 작은지 따져보기 전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놈 참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없으란 법이 없다. 어떤 사람이 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없진 않겠지만 정말 속으로는 잘됐다!’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인격을 제대로 존중해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만일 그가 물에 빠져 죽을 지경이거나 스스로 목숨을 내던질 지경에까지 몰렸다 하더라도 일부러 모른 척해 버릴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인물이 의외로 많다. 굳이 몇몇 사례를 들어보자면 정치인들이 많이 들어가겠다. 훌륭한 정치인도 많지만, 국민이나 나라의 앞일보다 자신의 이익과 당리당략에 얽매인 정치인이 많다. 나중에 생을 마감할 때는 선한 얼굴과 마음으로 돌아올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의 모습을 봤을 때는 왼고개를 틀어버리고 싶은 정치인이 많다. 각종 탈세와 불법 뇌물, 불법 정치자금을 대어주면서 개발이익을 얻는 일부 재벌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노동자를 조선시대 하인 부리듯 하면서 호의호식하는 이들을 보면 그들이 먹는 밥과 반찬이 나중에 지옥에 가서 먹게 될 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재부 진주향우회 사무총장 정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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