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주의 환경상식 108-18

한지의 주원료는 닥과 닥풀이다. 한지 제지의 전체적인 흐름은 닥나무 채취, 껍질 벗기기, 껍질 삶기, 껍질 씻기, 껍질 두드리기, 껍질에 닥풀 풀기(황촉규-식물뿌리 즙,진윤제), 한지 뜨기, 한지 말리기 순으로 제조가 된다.

한지에 대한 극찬으로는 송나라 손목(孫穆)이 지은 『계림지(鷄林志)』에 "고려의 닥종이는 윤택이 나고 흰 빛이 아름다워서 백추지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는 신라시대에 제조된 『무구정광다라니경』(국보 제126호, 704~751년 제조)으로 중국에서 말하는 '백추지'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추지가 주류를 이뤘고, 고려시대에는 '고려지'로 불리는 '견지(繭紙)', '아청지(鵝靑紙)' 등이며, 중국 역대 제왕의 진적을 기록하는 데에 고려의 종이만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문헌 《박물요람(博物要覽)》에 보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먹(墨)을 품는 품이 고려 종이(紙)만큼 겸손한 것이 없다 했으니 종이에 대한 칭찬치고는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문필용(文筆用)으로서뿐 아니라 질기기로도 세계 제일이었다. 중국의 고자(高子)는 ‘고려지는 누에고치를 넣어 만들었기로 희기가 백설 같고 질기기가 비단 같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세종 때 조지서(造紙署)를 두고 종이를 생산할 정도로 수요가 많았고, '상화지(霜華紙)', '백면지(白棉紙)' 등이 유명했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종이가 대량 수입됐고 해방 후에는 양지가 점차 대중지의 위치를 차지해 버렸다.

한말 러시아 대장성(大藏省)의 조사보고서인 《한국지(韓國誌)》에 보면 ’한국 종이는 섬유를 빼어 만들므로 지질이 서양 종이처럼 유약하지 않으며, 어찌나 질긴지 노끈을 만들어 별의별 공작을 다한다. 종이에는 그 결이 있어 그 결을 찾아 찢지 않고는 베처럼 찍어지질 않는다.‘고 써 놓고 있다.

한지는 그 질긴 특성 때문에 우산이나 비 모자(雨帽)나 부채를 만드는 정도는 약과다. 종이 옷(紙衣), 종이 신(紙鞋)뿐만 아니라 종이 노끈, 종이 등잔, 종이 물통, 종이 대야, 종이 요강까지 있었으니 선조들의 지혜와 재능은 놀랍기 그지없다.

우리 선조들은 한지로 만들 수 없는 세간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환경보호 운운 하는 요즘,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이 때, 에어컨과 선풍기 대신 화학제품을 쓰지 않으면서 우리의 멋과 운치를 살릴 수 있는 친환경적인 여름용품인 부채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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