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태완이 4

태완이가 먼저 등록금을 받았지만 병식이가 등록금을 받을 때까지 사흘을 더 기다렸다.

그 사이에 태완이는 혹시 병식이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까 조바심이 나서 하루에도 몇 차례 씩 병식이를 찾아가서 상의를 빙자하여 결심이 변하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니, 마음이 바뀐 건 아이제?”

“하모, 내가 와 마음이 바뀌노?, 걱정하지 말거래이”

“혹시 내 몰래 니 혼자 가는 것은 아니제?”

“의심도 팔자다, 내가 니하고 같이 간다고 했잖아, 와 그래 사람을 못 믿노?”

“아이다, 그냥 해 본 소리다”

태완이는 같은 소리를 학교 가기 전 아침에도 하고, 학교에서도 하고, 집에 와서도 또 한다. 병식이는 그런 태완이가 밉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라 화를 내지도 못하고 꾹 참고 지나는 수밖에 없다.

태완이는 평소에는 얌전하고 싹싹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잘 하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잘 탄다. 그래서 학교에서 태완이의 별명은 계집애다. ‘계집애’라는 별명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조금만 이상한 말을 해도 부끄러워 얼굴이 벌게지고 자기의 속마음이 들켰다 싶어도 별개지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어떨 때는 화를 낼 상황이 아닌데도 갑자기 불같은 화를 내는 불뚝 성질이 있다. 태완이의 성격을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자주 있다. 그래서 태완이에게는 ‘미친년’이라는 또 다른 별명도 있다.

‘얌전한 계집애’와 ‘미친 년’의 이중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태완이다.

병식이는 누구보다도 태완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태완이의 성질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 그래도 같이 붙어 있다 보면 본의 아니게 조심한다고 해도 성질을 건드릴 때가 있는데 태완이는 성질을 낼 때는 그 순간만 대응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금새 누그러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된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도 않는다.

태완이가 같은 질문을 아침저녁으로 반복적으로 해도 그 성격을 잘 아는 병식이는 그때 마다 꾹 참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킨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거사는 병식이가 제안하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준비는 병식이가 다 한다.

병식이는 다람쥐를 잡을 잠자리 채 두 개를 만들어 광 속에 감추어 두었다.

만약 부모님이 웬 잠자리채냐고 물으면 여름방학 때 잠자리를 잡거나 물에서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만들었다는 핑계 꺼리도 미리 준비해 놓았다.

굵은 철사 줄을 둥그렇게 휘고, 망사 천을 보자기처럼 만들어 둥그렇게 휜 철사에 붙여 제법 그럴듯하고 튼튼한 잠자리채를 만들어 놓았다. 잠자리채에 미리 긴 대나무를 달아 놓을 경우 운반에 불편하므로 대나무는 현장에서 적당히 구해서 쓰기로 하였다.

둘은 집에서 나올 때 약속이나 한 듯이 가족들의 눈을 피하여 일반 옷을 입고 집을 나섰고, 태완이는 책상 위에 아버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한 통을 써 놓았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 오겠다고.

둘은 진주를 거쳐 지리산 입구 마을인 산청 원지까지 가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철물점에서 쥐덫 여섯 개를 산 후 구멍가게에서 군것질 거리로 사탕 한 봉지, 기름에 튀긴 밀가루 과자 한 봉지와 라면과자 몇 봉지를 샀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다.

이제 다람쥐 잡을 일만 남았다.

태완이 5

두 가출 소년은 원지에서 지리산 중산리로 가는 완행버스를 탔다.

버스를 오래 동안 타면 더 재미있고 신나게 보이는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들이 싣고 탄 짐 보따리 속에 대가리만 겨우 내놓고 가쁜 숨을 쉬는 닭 2마리가 무언가 불안한 기색을 맡았는지 연방 대가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놀란 듯 동그란 눈을 눈을 꿈벅인다. 태완이는 팔려 가는 저 닭이 어디로 갈지 몰라 두려워하는 것 처럼 자신도 저 닭보다 하나도 나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병식이의 꾐에 빠져 가출을 결행하였지만 과연 성공할지 모르는 것은 고사하고 당장 1시간 후 자신들의 모습이,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챙겨갈지 모든 게 미지의 세계이고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 태완이의 눈알은 차창으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저 닭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반쯤은 상한 생선을 실었는지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시골버스는 마을마다 들리고, 정거장도 아니면서 길가다가 손만 들면 세워서 태우고, 내린다고 세워 달라면 또 세운다. 이래 서고 저래 서면서 쉬엄쉬엄 가는 진짜 시골길 완행버스다.

그래도 버스는 중산리에 도착하였다. 버스가 중산리에 도착하자 여남은 노인들 틈바구니에서 두 소년도 내렸다.

소년들은 씩씩하게 내리긴 내렸지만 한겨울 끝도 없이 하얀 눈밭에 내팽겨 쳐진 아이들처럼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라 오든 길을 쳐다보기도 하고 눈앞에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지리산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밥 먹기 전에 강이지 오줌 뉘러 올라갔다 내려 올 수 있는 동네 앞산, 뒷산하고 지리산은 차원이 다르다.

태완이는 지리산의 웅장한 위용을 바라보며 넋을 잃는다.

말로만 듣던 지리산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지리산의 정상이 천왕봉인데 태완이가 서 있는 곳에서 천왕봉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눈 앞에 펼쳐진 능선의 거대함 만으로도 촌놈들의 기를 꺾어 놓기에 충분하다. 지리산의 위용에 빠져 멍하게 서 있는데 병식이가 태완이의 소매를 슬쩍 건드린다.

“니, 이렇게 계속 서 있을끼가?”

“아인데, 지금 딱히 우리가 계획은 없다 아이가?”

계획이 와 없노. 큰 계획은 있지만 작은 계획이 모자라는데 이제부터는 진짜 구체적인 계획을 짜야지...“

“그래 함 들어 보자, 네 훌륭한 계획을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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