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정치학 박사
전 주중국대사관 공사
통일지도자 아카데미 부원장

“식민지 시대적인 감정적 반일 사고는 저항이지 전략이 될 수 없어

감정싸움으로 국익을 얻는다는 건 말도 안 돼

차가운 이성으로 실리를 챙겨야 국익”

작년 10월의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로부터 시작된 한·일 간 갈등은 급기야 지소미아 폐기로 발전되었고, 한미동맹과 동북아의 한‧미‧일 삼각 협력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북아 신 냉전 구도는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안보지형도 지각 변동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힘이 부족한 한국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요소가 거의 없다. 한국의 버팀목이었던 미국은 멀어지고 한국을 영향권 내에 두려는 중국의 마수가 다가오는 이러한 변화는 불리한 변화이다.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이후 미국은 이를 한미 동맹 문제와 연계하며 예전과 달리 노골적으로 불편한 내색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자칫 한국의 ‘반일‧친중 노선’으로의 경사로 비칠 수 있고, 주한미군철수 유도를 위한 사전 조치로도 볼 수 있어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무역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국의 전략에 큰 차질을 가져올 가능성도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파기결정이후 즉각 ‘실망했다’는 소견을 밝혔고, 미 국방부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며 처음으로 ‘문재인 정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불만을 표명하였다. 심지어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8월 28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일) 양측이 이에 관여된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고 지금도 실망한 상태”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노골적인 불만 태도에 지난 8월 28일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하고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한‧일 양자관계에 국한된 것인 만큼 한미 동맹과는 무관하니 미국 정부가 공개적, 반복적으로 실망감을 표시하지 말아달라고 자제를 요청하였는데, 이 요청이후 미국정부는 오히려 더욱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국익 우선’ 논리이다. 지소미아 폐기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일본과의 경제협력 및 우호관계도 중요하지만 국익 관점에서 물러설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뭐가 국익인지는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아마도 일본에 감정적으로 강력히 대립하는 것을 국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반일 감정풀이에 동조하지 않으면 친일세력으로 몰아간다. 이들의 사고는 아주 이분법적이다. 온 국민을 반일 감정으로 몰고 가는 것은 결코 국익을 위한 게 아니고 자칫 자학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농경시대가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덧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해 있고, 과거와 같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식민지 국가가 아니다. 과거에 매달려 저항의 이념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연상시키는 비발전적이고 폐쇄적인 자학적 증상이다. 물론 과거 역사에서 있었던 민족적 굴욕은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해야 하며 국력을 결집하는 에너지로 승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숨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국력을 키워가며 역사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지 당장 민감한 현실관계에서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냉전 이후 국제사회는 국가의 경제적 역량이 외교적 수단이 되고 국제정치상의 능력으로 전환되고 있다. 전 세계가 단일한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그들의 장점을 경쟁력으로 하여 발전을 추구하며 얻는 것이 국익이다. 언제까지 저항적 반일감정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감정일 뿐이지 결코 국익을 논하는 태도가 아니고 더욱이 일본을 능가하려는 전략이 될 수도 없다. 일본의 과거 잘못 시인과 사죄요구에 매달리기 보다는 외교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국익을 챙겨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감정으로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어리석은 나라는 지구상에서 아마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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