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기행-觀 1

류준열
수필가·여행칼럼니스터
천상병문학제추진위원장
작품집: 무명그림자 외
전 중등교장

유채, 양귀비, 옥수수, 해바라기 철마다 색색 옷 갈아입는 천혜의 땅, 그 가운데 학살의 참상 고스란히 간직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아르바이트 막트 프라이(ARBEIT MACHT FREI)’란 달콤한 구호 매달린 철문, 오싹한 전율 감도는 지옥문이다.

낯선 땅에서 학살당해 불귀의 객이 된 수 백만 명 체취 묻은 삶의 흔적 놓여 있다. 산더미 같이 쌓인 빛바랜 금빛 머리카락에서 긴 머리 빡빡 깎인 여인의 얼굴 엉기고 뒤죽박죽 엉키어 쌓인 가지각색의 안경더미에서 절망과 공포 깃든 눈망울 빛나며 크고 작은 수천켤레 신발에서 길게 줄서서 생과 사의 길로 나뉘어 갈라서는 광경 눈에 선하다.

죄수번호 부착된 의복에서 감방에 갇혀 있는 비참한 몰골을 어린애 생체실험 사진에서 수술대 위 축 늘어진 신체 해부하는 장면을 3층으로 된 침대 밀짚 이불에서 오그린 자세로 빽빽하게 뒤엉켜 잠자는 모습을 흔적 하나하나 고통으로 일그러진 환영으로 바뀌며 그렁하게 눈물 흘리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따로따로 내딛는 혼비백산의 발길, 푸른 하늘 잿빛으로 물들며 빙빙 돌아가다. 복받쳐 오르는 감상(感傷) 참으려 애써 보지만 눈 주위는 노을처럼 붉게 물들고 저절로 눈물 흘러내리다. 환영이 흘리는 눈물인지 내가 흘리는 눈물인지 구분되지 않는 아우슈비츠의 구슬픈 오후다.

커다란 수목으로 둘러싸여 침묵의 긴 그림자 드리우고, 수백 만 명 앗아간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이다. 이 천 여 년 믿어온 그들의 신앙 이곳 죽음의 방에서는 찬양하면 안 된다. 돈 많고 선민의식 젖은 유태인이라고 해서, 공산주의에 물든 슬라브인라고 해서,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사탄으로 몰아 당연히 처형하였다고 말하면 안 된다. 인종청소란 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피부나 종교가 달라도 오장육부 지닌 다 같은 사람인데 어찌 사탄으로 몰 수 있겠는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사탄이 될 수 있겠는가. 멀쩡한 남녀노소 사탄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학살할 순 없다.

생사 경계 판정하는 저승사자는 군의관 손가락이었다. 까딱거리는 손가락 따라 수용소로 가거나 가스실로 가거나 가스실 앞 어린애 어른 가리지 않고 옷 벗겨지고 머리카락 잘릴 때, 고향의 푸른 하늘 떠올리며 살려 달라고 울부짖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 신은 구원의 손길 내밀지 않았다.

차곡차곡 쌓이는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벌거벗은 몸뚱이 아우성치고 몸부림쳐 보지만 허망한 몸짓일 뿐, 신은 구원의 손길 끝내 뻗지 않았다. 평소 경외하고 찬양했던 신, 생사의 절박한 순간 간절하게 불러보지만 강림하지 않았다. 땅속에서, 땅위 가스실에서, 푸른 하늘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스실 굴뚝 위 수 백 만 영혼 시뻘건 불꽃에 쌓여, 구천에 떠도는 영혼의 흐느낌처럼 훨훨 날아올라 밤이면 나뭇잎 풀벌레 구슬피 울었다.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시켜 준다는 말 따라 정든 고향 뒤로 하고 머나먼 여정 나섰는데 가방 크기와 무게 제한하라는 명령도 달콤한 말로 들으며 가재기물 챙겨 부푼 희망으로 기차에 올랐다. 희망의 땅 오슈비엥침에 왔다는 안도감에 젖어, 약속의 땅 알려 주려는 듯 악대의 신나는 행진곡 들으며 행복한 내일 꿈꾸며 줄 서 있었다.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체코 동유럽 6개국 기행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