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가 김윤세

구 월 금 강 소 슬 우 우 중 무 엽 불 명 추

십 년 독 하 무 성 루 누 습 가 사 공 자 수

九 月 金 剛 蕭 瑟 雨 雨 中 無 葉 不 鳴 秋

十 年 獨 下 無 聲 淚 淚 濕 袈 裟 空 自 愁

구월이라 가을 금강산에 쓸쓸한 비가 내리니

비에 젖은 나뭇잎들, 다 같이 울고 있네요

십 년 동안 외로움에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로

늘 가사를 흠뻑 적시며 깊은 시름에 잠깁니다

숱한 인연들과 어렵사리 이별한 뒤 세속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 머리 깎고 스님이 된 어느 비구니比丘尼. 끝없이 나고 죽는 생사대사生死大事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찾아, 길을 인도해 줄 스승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운수행각雲水行脚이 마침내 금강산에 다다라 기쁜 마음으로 그곳에 깃들게 되었다.

지상 최고의 별천지別天地요, 극락세계極樂世界라 여겨지는 금강산의 한 암자에서 10여 년 동안, 자신 속에 내재한 부처의 속성을 찾아내 더 훌륭한 존재로 승화 완성시키기 위해 부단한 정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어느 경지에 다다른 어느 날, 초가을 비에 젖어 울고 있는 나뭇잎들의 울음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묘음妙音을 듣게 되고 한때 무성하던 나뭇잎들이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고 고요의 세계로 들어가는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보게 된다.

그녀는 허망한 모습으로 가득 찬 세상 너머 여여如如한 존재의 실상을 보는 순간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고정관념의 두꺼운 틀이 깨지며 해탈解脫의 기쁨을 만끽하는 동시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평범한 한 여성으로서의 삶의 고독이 물밀듯이 밀려오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것을 어쩌지 못한 채 가사가 푹 젖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문득 사위四圍가 오로지 고요하기만 한 적멸의 세계에 드니 무한한 기쁨과 한없는 슬픔이 뒤섞여 한꺼번에 밀려와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 없이 줄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조선조의 비구니로서, 혜정慧定이라는 법명法名을 가진 스님의 ‘추우秋雨’라는 제목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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