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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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연합신문
  • 승인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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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용수

2.악연의 시작

1.

새벽녘에 잠시 잠이 들었나 보다.

자다 말고 몇 차례 밖으로 드나들 때는 눈이 없었는데 잠시 자는 동안 눈발이 날렸는지 마당이 제법 하얗게 변했고, 사그락 거리는 눈 밟히는 감촉이 너무 싱그럽고 좋다.

지서가 사는 동네에도 눈은 거의 보지 못하기  때문에 겨울이면 눈을 보기 위해서 산청이나 함양의 지리산 골짝으로 가서 눈 구경을 하기도 했다.

지서는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사무실로 가서 사무실에서 경리를 보는 조부장에게 몸이 아파 근무를 못하겠다고 통보를 하였고, 조부장이 장부를 정리한다고 골똘히 앉았다가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대답을 듣지도 않고 숙소로 돌아와 누워 버렸다.

조부장은 사장의 친동생이지만 한배에서 나온 사람들이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사장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조부장은 사장이 없을 때에는 사실상 직공들을 통제하거나 지시를 하는 사람이지만 천성이 매우 부드럽고 온화하며 찬찬하기 까지 하다. 직공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면서 사장에게 곧잘 건의도 해 주는 등 현실적으로 개선되는 것이 눈에 보였으므로 직공들은 대부분 사장보다 조부장을 훨씬 더 좋아하였다.

그리고 사장이 없고 조부장이 공정을 관리할 때면 직공들이 더 열심히 일을 하였다.

실제 조부장이 공정관리를 하면 생산성이 훨씬 더 높아지는 걸 보면 사람은 윽박지르기보다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상황을 설명하면서 인간적인 호소를 하는 것이 생산적인 면에서도 더 효율적임이 분명하다.

지서는 사장보다 한 30분 쯤 일찍 출근하는 조부장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하루를 쉬기 위하여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가서 조부장를 만났던 것이다.

기숙사로 돌아 온 지서는 아직 공장지대 입구에 있는 의원이 문을 열 시간이 아니므로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하면서 간밤에 잠을 못 잤으므로 눈이 따갑고 머리도 아파 일단 자리에 다시 누웠다.

자리에 다시 누웠으나 머리가 깨질듯 하고 갑작스레 뇌를 콕콕 찌를 때 마다 진저리를 치면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였지만 두통은 여전하여 술을 한 잔 마시면 좀 나아질까 하여 공장 부근의 구멍가게로 쪼르르 달려 가서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와서 먹다 만 김치 조각을 집어 들고 막 마시려고 하는데 사장이 그곳 까지 찾아왔다.

“한씨, 어디 많이 아프나?”

지서는 앉은 채 고개만 돌려 대답한다.

“사장님 오셨습니꺼. 오늘은 도저히 일을 못할 것 같아서요. 몸이 가렵고 감기 기운도 있어서 어젯밤 잠을 한숨도 못 잤는데, 이제는 머리도 너무 아프고 온몸이 욱신거려서 참을 수가 없습니더. 그라고 예, 무엇보다도 눈알이 빠질 것 같아 눈을 뜰 수가 없심니더.”

방문 앞에서 문만 빼꼼 열고 말을 하던 사장이 방안으로 들어온다.

“어디 한 번 보자.”

얇은 추리닝바지와 쉐타 차림으로 누워 있던 지서는 사장이 방안으로 들어 오자 마지 못해 일어나 앉는다 사장은 요를 깔고 앉아 있는 지서 옆으로 다가와서 냉기만 가득한 방바닥에 앉으면서 지서의 몰골을 훝어 본다.

지서의 팔과 다리에는 붉은 발적이 퍼져 있고 군데군데에서 진물같은 것아 흐르거나 말라 붙어 있어 한 눈에 보아도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아이구 이 친구야 몸이 이런데 술을 마시면 되나? 이런 발적에 술이 들어가면 확 디비진다 아이가.”

“그건 아는데요, 술을 안 마시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심더.”

“그래도 참아야지, 술을 마시고 나면 더 참을 수가 없는기라. 나도 많이 해 봐서 잘 안다.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절대 마시지 마라.”

사장은 지서의 병이 분명히 산재와 관련이 있음에도 그 말은 쏙 뺀 채 지서가 마시려는 술 탓으로만 돌리면서 지서의 술병을 뺏아 옆에 있는 병뚜껑을 집어 들고 술병 위에 얹어 손바닥으로 콱 눌러 닫은 후 윗목으로 밀어 놓는다.

지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술을 마셔볼까 했지만 이런 가려움증에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사장이 술병을 빼앗자 그냥 순순이 뺏겨 버린 것이다.

“한씨, 그리고 말이야, 오늘 중으로 태진물산에 운동화 500족하고, 고무신 1,000족을 납품해야 되는데 아직 물건이 덜 만들어 졌는 기라. 천상 니가 나와서 좀 도와 줘야겠다. 웬만하면 니를 안 부르려고 했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다. 싸게 나와서 작업을 좀 해라. 그라고 내일 하루 푹 쉬어라. 내일은 출근을 안 해도 일을 한 것으로 처리해 주께, 특별히 유급휴가를 주는 기라. 알겠나?”

“알겠심더, 고맙심더 사장님예, 그런데 사장님, 오늘은 도저히 일을 못 하겠심더.”

“안다, 니 상태를 보니까 일하기가 어렵겠다. 그런데 우짜노, 오늘까지 안 맞춰 주면 안 되는 기라. 태진 물산에서 난리가 난다. 오늘 물건을 안 보내주마 우리하고 거래를 끊는다고 겁을 주는 기라. 부탁 좀 하자.”

사장이 지서의 손을 잡고 애원하다시피 한다.

사장이 그렇게 사정을 하는데 오죽 급하면 이런 누추한 곳 까지 찾아 왔겠나 싶으면서도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다.

“사장님, 미안한데예, 지는 지금 때리 죽이도 못하겠심더. 정말 몸이 말이 아인기라예.”

사장은 지서를 한 참 째려보더니 퉁명스럽게 ‘알았다’고만 하고 나가 버린다.

지서는 사장이 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채 5분도 안되어 조부장이 또 찾아온다.

웬만해서는 조부장이 이런 상황에서 찾아오지 않는데 어지간히 급하기는 급한 모양이다.

조부장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지서는 왜 왔는지 알겠다고 하면서 조부장이 말을 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복을 챙겨 든다.“한씨, 고맙데이 정말 고맙데이. 니가 내 체면을 세워 주는데 잊지 않을끼구만.”

사장, 경리,조부장도 현장에 투입되어 작업을 한 끝에 밤이 되어서야 겨우 물량을 맞출 수 있었다.

“한씨, 고맙데이 정말 고맙데이. 니가 내 체면을 세워 주는데 잊지 않을끼구만.”

사장, 경리,조부장도 현장에 투입되어 작업을 한 끝에 밤이 되어서야 겨우 물량을 맞출 수 있었다.

물량이 맞추어 졌으면 배달을 해 주어야 하는데, 엎치면 덮쳐진다. 이번에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정기사가 공장안에서 운동화 안창 넣는 일을 하다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 버렸다.

정기사는 사람이 순하고 일도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몸이 너무 약한 것이 흠이다.

정기사는 원래 공장의 생산직공으로 입사하였지만 몸이 약하여 오염된 공기 속에서 일하는 현장직은 버티지 못하여 입사한지 3개월 만에 사표를 제출하자 사장은 그의 성실성을 높이 사서 운전면허를 따게 해 주었고, 그 후로 운전기사로서 일을 하였다. 사장이 그런 배려를 해 주게 된 것도 사실은 조부장의 역할이 컸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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