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한국문인협회, 신서정문학회
국보문인협회 부이사장
남강문학협회 감사

2.악연의 시작

4.

그런데 사고가 난 때가 연말 연시였고, 연말 연시는 일년 중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때이므로 교통사고에 너무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없어 그나마 차려진 수사본부에서 하나씩 둘 씩 인력을 빼가다 보니 결국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사건 조사는 자연 뒷전으로 밀렸고, 그나마 형식적으로 유지해 오던 수사본부도 채 두 달이 안 되어 사실상 해체되어 이 사건은 캐비넷 속에서 잠자는 사건으로 변해 버렸다.

경찰에서 이 사건 조사에서 사실상 손을 떼면서 유가족에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는 제공해 주었다.

즉, 3명이나 사망할 정도의 충격이었으면 사고 순간 상당히 큰 충격이 가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현장에 범퍼나 전조등, 백밀러, 파손된 유리등 유류품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소형차량은 아니며 사고 장소가 공장지대로서 밤늦은 시간에 사고가 난 걸로 보아 인근에 위치한 공장과 관련이 있는 대형 차량, 즉 대형 트럭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경찰에서 제공해 준 정보는 보기에 따라서 너무 당연하고 막연한 정보로서 그것이 무슨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그 정도의 정보도 젊은 아녀자에게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이었다.

유가족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경찰의 힘만 믿을 게 아니고 자신이 직접 조사를 하여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는 결의를 다져갔다.

유족이 목격자를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다니자 처음에는 젊은 새댁이 남편과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고 졸지간에 혼자가 되어 원한을 품고 범인을 찾으러 다닌다는 사실에 동정을 느낀 인근 공장의 사장들은 어떤 공장에 대형차량이 있으며 어떤 공장의 기사는 성질이 거칠어 사고를 자주 낸다는 등의 정보를 알려주기까지 하면서 협조를 해 주었으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일하는 사람을 붙잡고 사건 관계를 물어봄으로서 작업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서 점차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년여의 시간이 경과 하면서 그들의 동정심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는 박대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일부 수확은 얻을 수 있었다. 조사장의 신발공장을 비롯하여 몇몇 운전기사가 의심스러운 인물로 떠올랐다.

유가족은 의심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좀 더 깊이 있게 확인하려고 하였지만 노골적인 박대에 부딪혀 자신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왔음을 깨닫고 자신이 조사하여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포함한 자료를 경찰에 통고하면서 좀 더 조사를 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더욱이 유족은 사건 조사를 하는 교통계와 조사계 직원들을 수시로 초청하여 식사 대접을 하고 수사비 명목의 돈을 지급하면서까지 조사 활동을 독려하였다.

유족의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인근 공장의 사장이나 종업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고, 조사장도 인근 공장의 사장들로부터 피해자의 유족이 범인을 찾아 수소문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조사장, 너거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 둔 사람 중에 한씨라는 사람이 있었나?”

“한씨? 있은 것 같기도 하고...워낙 많이 들락거려 일일이 기억할 수가 있나.”

“니, 기억하제? 한 1년 전에 밤에 교통사고가 나서 일가족이 몽땅 죽은 사건 말이야.”

“음, 그래. 기억하지, 그기 벌써 1년이나 됐나?, 근데...?”

사고가 난 날을 날짜까지 기억하는 조사장이 짐짓 잊어 버린체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대꾸한다.

“너거 공장에서 일하던 한씨가 그 사고를 내고 도망갔다는 말이 있던데, 니 아나?”

조사장은 찔끔하였지만 오리발을 내 밀 수밖에 없다.

“에이, 말도 안돼.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나?, 금마는 공장에서 일하는 놈이고, 운전하는 사람도 아닌데... ..., 우리 공장에 운전사는 정기사라고 따로 있잖아.”

“사고가 난 날은 정기사가 운전을 안 하고 한씨라는 사람이 했다 카는데...”

“멀쩡한 기사를 놔두고 왜 면허도 없는 사람한테 운전을 시키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맞는 말인가.”

“그래, 그렇긴 하지.”

“더우기 운전사가 없고 정기사가 성실해서 일부러 내가 돈을 줘서 면허를 따게 했는데...”

조사장은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뒤늦게 왜 그런 말이 오가는지, 그리고 조사가 어디까지 되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어 계속 말을 시킨다.

“건데 1년 전 사건인데 왜 이제 와서 씰데 없는 말이 떠 도노?”

“죽은 사람들이 아버지 하고 딸, 아들인데 그 가족이 한이 맺혀서 사고를 낸 사람을 찾아 다닌다는 구만, 잡기만 잡으면 자신이 찢어 죽인다고.”

“그럴만도 하지, 졸지에 가족을 다 잃어버렸는데 눈이 안 디비 지겠나...”

“맞는 말이지, 내 같으면 가족들을 따라 자살이라도 해 버리지 맨 정신으로 우째 살겠노. 그래 갖고 그 여자가 부전동 공장이란 공장은 안 다닌 데가 없다 카더라, 그런데 요즘은 무슨 증거가 좀 나타났는지 한동안 꿈쩍도 않던 경찰관도 다시 왔다 갔다 한다 카더라.”

조사장은 경찰관이 다시 조사를 시작하였다는 말에 움찔 놀란다. 그렇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가볍게 대답하면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

“하여튼 안 된 일이야... ”

이 말을 들은 조사장은 공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사고가 난 차를 조사해 보았다.

사고 직후에는 분명히 사고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로부터 또 1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앞 범퍼가 이리저리 찍히고 비바람에 씻기고 닳히면서 사고 흔적을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다.

그래도 찜찜한 우려가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문제가 되기 전에 사고 차량을 폐차하므로서 혹시 나타 날 증거나 기억들을 근원적으로 없애 버리기로 마음먹고, 곧바로 폐차를 해 버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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