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선인이 살아가는 진풍경 Ⅳ

조선시대 결혼과 미혼의 남자를 외관상 구분하는 근거가 바로 상투였다. 상투는 삼국시대의 고분벽화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 된 전통이다. 또한 우리 민족만의 풍습도 아니었다. 개화의 물결이 몰려오던 20세기 초반까지는 동북아시아의 대부분의 민족들이 머리를 길러 묶는 스타일이었다. 조선시대 남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상투를 틀어야 했다. 그렇다면 과연 조선시대 사람들은 상투를 틀기만 하고 머리카락은 정말 한 번도 자르지 않았을까?

긴 머리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상투로 묶으면 주먹크기의 또 하나의 작은 머리를 달고 있어야 한다. 진짜 상투는 상투의 아랫부분 주변머리를 깎아내고 그 주변머리만 말아 올려 상투를 틀었다. 이를 두고 ‘배코를 친다’라고 하는데 이 말이 구전되어 현재에도 면도하듯이 머리를 빡빡 미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즉 상투에 대한 단발령에 「효경」을 내 세워 항거하던 조선시대에도 머리를 자르고 배코를 치는 등 머리를 잘라 냈다는 것이다.

1895년 명성황후가 왜인들에 피살되고 12월 30일 김홍집내각이 단발령을 공포한 을미사변 당시 “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 오두가단 차발불가단(吾頭可斷 此髮不可斷)이라는 최익현의 상소문은 유교경전 13경의 하나인 효의 원칙과 규범을 수록한 효경의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손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損 孝之始也) 라는 구절과 함께 머리카락 유지가 효의 근본이므로 상투를 중요시 여겼다. 조선시대의 상투는 일반적으로 다음 4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베코치기]-상투의 크기를 조절하기 위하여 머리 정수리 밑을 돌려 머리숱을 쳐낸다

[상툿고 틀기]-밑에서부터 머리카락을 말아 올려 잡은 다음 아랫부분을 돌려 모양을 만든다

[동곳 꽂기]-부처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불두잠’이라는 여성 비녀와 같은 머리핀을 꽂는다

[망건두르기]-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 뒤와 상툿고에 묶어 고정시킨다

출처:엽기조선풍속사⦁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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