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3.함정

1.

밤새 독한 술을 퍼 마셔 황폐해진 위 속에 들이부은 냉수가 아무래도 탈인 난 것 같다.

속이 거북해 지다 못해 자꾸 설사가 나올 것 같고 헛구역질까지 나는 것이 나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집으로 들어가 따끈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웠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나지만 일단 나무를 한 지게라도 지고 내려가야 아버지의 역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를 악물고 찬새미골 까지는 가기로 하였다. 찬새미골에는 적당한 나무들도 많을 뿐만 아니라 조그만 새미까지 있어 춥거나 덥거나 간에 나무하기는 그 만큼 좋은 곳이 없다.

다만 마을에서부터 너무 멀고 길이 험하여 나이가 든 사람들은 찬새미까지 오지 않고 중간 적당한 곳에서 나무를 하지만 태완이 같이 젊고 힘이 있는 사람들은 조금 멀고 길이 험하더라도 이곳까지 올라와야 크고 불땀이 좋은 땔감을 해 갈 수 있다.

산을 오르는 길에 공연히 지게 작대기로 죄 없는 나무 등걸을 갈겨 보기도 하고 얇은 홑바지를 우습게보고 날카로운 가시로 사정없이 찔러대는 찔레꽃 똬리를 후려치기도 하면서 산을 오른다.

요즘에는 농촌에서도 땔감나무 대신 연탄이나 석유 곤로를 많이 사용하고 가끔이지만 가스를 쓰는 집도 있는데 유독 태완이네 집은 아직도 나무를 땔감으로 고집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 오르기 때문에 올라오는 구역질을 억지로 참을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긴 숨을 쉬면서 구역질을 참는데 도대체 부글거리는 뱃속에서 터져 나올 것 같은 설사는 참을 도리가 없다.

태완이는 아랫배가 부글거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급하게 지게를 벗어 던지면서 허리띠를 풀고 오솔길에서 한 발자국 들어간 길가에서 급하게 바지춤을 내리고 쪼그려 앉는다.

제법 뾰족하게 올라온 풀들이 엉덩이를 찌르듯이 간지럽힌다.

엉덩이를 까고 앉으면 설사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릴 것 같았는데 생각과 달리 설사는 나오지 않고 쏜살같이 나온 것은 참았던 오줌을 똥구멍으로 싸는 듯 맹물 줄기였다.

태완이가 오줌 싸듯 똥물을 한 줄기 쏟아내고 난 다음에도 속이 편하지 않아 엉덩이에 힘을 잔뜩 주면서 용을 써 보았지만 결국 설사는 나오지 않고 엉덩이에서는 삐질삐질 공기 빠지는 소리만 나고 속은 여전히 부글거리면서 불편하다.

짜증이 나서 옆에 있던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고 앉은 자세로 산 아래로 멀리 던져 보지만 돌멩이는 바로 앞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 둥치에 맞아 태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곳으로 곧장 되돌아온다.

태완이는 자신이 던진 돌멩이가 곧장 되돌아오자 앉은 채로 몸을 비틀어 돌을 피한다. 뭐 하나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에서 욕이 튀어 나온다.

“씨펄!”

태완이는 얼굴이 시뻘겋게 되도록 용을 쓰면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으나 속이 시원해지지도 않고 또 제대로 된 설사도 나오지 않으므로 일어나야겠는데 문제는 엉덩이를 닦을 휴지가 한 장도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야 어느 집에도 휴지는 없고 휴지 대용으로 신문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그것으로 밑 닦이를 하는데 신문같이 미끈거리는 표면을 가진 종이는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살살 부벼 표면을 까칠까칠하게 하면서 동시에 부드럽게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산골짜기에서 그나마 신문지도 구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방법은 잎이 넓은 적당한 나뭇잎이나 풀잎을 구해 이것으로 뒤처리를 하여야 한다.

태완이는 뒤 처리를 할 적당한 나뭇잎이 있는지 살펴보다가 저만치 손바닥 크기의 자리공풀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엉덩이를 깐 채 오리걸음으로 엉금엉금 몇 발자국 다가가서 팔을 벋어 낫으로 줄기를 자르고 지게 작대기로 자리공 잎을 끌어 당겨 뒤처리를 한다.

자리공은 겉이 매끄러운 풀이라서 엉덩이를 닦는데 신중해야 한다. 힘을 안주면 닦이지를 않고 힘을 조금이라도 과하게 주면 잎이 찢어지면서 손가락이 빠져 미끄덩 하고 항문에 붙어 있는 똥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수 좋게 잎을 찢지 않고 뒤처리를 하였다. 제대로 닦였는지 궁금하였지만 지금 이 산중에서 달리 어찌 할 수도 없고, 다행인 것은 덩어리 똥이 나올 경우 항문 주변이 더러워지면서 항문에 묻은 찌꺼기가 하루 종일 찝찝한 채로 남아 영 불편하게 하지만 소변줄기 같은 설사를 하였기 때문에 젖어 있는 엉덩이는 자연스레 마른다고 보고 바지춤을 끄집어 올린다.

정히 찝찝하면 찬새미에 가서 엉덩이를 씻기로 하고.

2.

신자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병식이를 좋아하는 티를 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신자는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병식이를 촌놈이라고 놀리면서 상대도 하지 않았고, 은근히 태완이를 좋아하였다.

학교에 가면 남자 애들이 여자아이들 보다 숫자가 많으므로 여자들은 잘 생기고 공부 잘하는 남학생을 골라 좋아하는 마음을 은근히 나타내지만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여자아이가 어떤 남자아이를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놀이를 할 때나 쉬는 시간에 어떤 남자아이 옆에 어떤 여자아이가 자주 나타나는지, 아니면 어떤 여자아이 곁에 어떤 남자아이가 나타나는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다 보면 대강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눈치 챌 수 있는 정도가 전부였던 시절이다.

사실 신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태완이 옆에서 얼쩡거리면서 옷매무새를 고치거나 태완이에게 다가 갈 때는 예쁜 머리띠나 핀을 하면서 머리를 매만지다가도 다른 곳으로 갈 때는 핀이나 머리띠를 벗어 가방 속에 곱게 챙겨 넣는 행동을 하는 것을 태완이는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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