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선인의 풍속-Ⅻ

백두산 호랑이의 한-조선조 역대 임금들 중에서 호랑이 사냥에 가장 열을 올렸던 인물을 꼽으라면 세조를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계유정난을 일으켜서 권력을 차지한 세조에게 인생의 라이벌 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바로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였다.

김종서는 세종시절 6진을 개척하면서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이었다. 문종이 죽은 이후 권력의 진공상태에서 어린 단종을 보위하며 수양대군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웠던 김종서. 수양대군으로서는 그가 버겁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결국 계유정란을 일으켜 김종서를 제거하긴 했으나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의 그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김종서의 죽음을 알게 된 함길도 절제사 이징옥이 난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래저래 세조에게 있어서 호랑이는 지워버리고 싶은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세조는 유달리 호랑이 사냥에 집착했다.

호랑이는 김종서의 현신-사복시에서 이르기를, ‘녹양목장’의 말 4필이 범에게 물렸습니다. 하니 임금이 녹양에 거동하여, 명하여 행 상호군 조득림을 좌상 대장으로 삼고, 행 호군 박수장을 우상대장으로 삼아, 오봉·수락산을 합해 몰이해서 범을 잡고, 날이 저물어서 환궁하였다. ‘녹양목장’은 국가기간시설이었다. -세조9년 3월 13일 기록-

또 취로정 연못가에 호랑이 발자취가 있었으므로 밤에 입직한 여러 장수를 불러서 말하기를, “좌상, 우상은 백악산·인왕산 등지를 몰이하라 만약 살펴서 호랑이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내가 마땅히 친히 가겠다. -세조9년 12월 9일 기록-

호랑이와의 전쟁에 나선 세조-사복시에서 이르기를, 호랑이가 녹양목장에 들어와서 말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녹양평에 거동하여 호랑이를 잡고 저녁때에 환궁하였다. 세조10년 5월 26일-

이렇듯 세조 시절의 호랑이 출몰은 국가 핵심시설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으로 대두됐다. 결국 세조는 집권 후반기에 이르면서 직접 호랑이 사냥에 뛰어들게 된다.

직접 말을 몰아 호랑이 사냥에 뛰어든 세조였지만 이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든, 녹양목장 호랑이든 조선시대 내내 세조의 후손들을 괴롭혔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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