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선인의 풍속-18

대식가에 운동량이 적었던 세종은
당뇨병인 소갈증에 안진, 각기병,
등창, 임질 등 성인병에 걸려

조선의 창업시기에는 칼을 쥔 자가 나와서 피로써 터를 닦았다면, 이후 수성의 과정에서는 붓을 든 자가 나와 창업 터 위에 기둥을 세우는 것이 역사의 순리였다. 태조 이성계에 이어 정종, 태종 은 무인의 기개로 수시로 사냥에 나섰고, 격구와 실외활동을 좋아했다. 이렇게 1,2,3대 임금 모두 무인의 임금이었으나, 4대인 세종은 확연한 문인의 임금이었다.

세종1년 10월 9일의 기록에는 “주상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몸이 비중하시니 마땅히 때때로 나와 노니셔서 몸을 존절히 하셔야 하겠으며...” 실록의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세종은 왕성한 식욕과 성욕을 가진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식가로 산해진미에 파묻혀 살았으며, 정력을 과시했다.

조선 역대 27왕들의 부인과 자녀의 수를 보면, 왕후와 후궁의 수가 10명이상이 3명이며, 부인 5명이상이 11명이었다. 또한 20명이상의 자녀를 둔 임금이 5명이나 되었다. 세종은 6명의 부인과 18남 4녀인 22명의 자녀를 두어 조선 왕들 중 아들을 가장 많이 생산했다.

세종의 종합병원 격의 병력에 대한 기록으로, 세종 21년 6월 21일에 “내가 젊어서부터 한쪽 다리가 치우치게 아파서 10여년에 이르러 조금 나았는데, 또 등에 부종으로 아픈 적이 오래다. (중략) 온정에서 목욕을 하였더니 과연 효험이 있었다. 또 소갈증(당뇨병)이 있어 열 서너 해가 되었다. 지난 해 여름에 임질을 앓아 오래 정사를 보지 못하다가.... 지난봄 강무한 뒤에는 왼쪽 눈이 아파 안막을 가리는 데 이르고, 오른쪽 눈도 어두워서 한 걸음 사이에도 사람이 있는 것만 알겠으나, 누누누구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니....”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은 이때 당뇨병인 소갈증에, 안질, 각기병, 등창, 임질 등 거의 모든 성인병에 걸려 있었다. 대식가에 운동량이 적었던 세종은 일찍부터 당뇨병에 걸렸고, 당뇨합병증으로 가히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자체였음을 실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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