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설가 김용수

4.배신

3.

“이것들을 당장...” 하고 뒤따라 나가려고 하는데 영길이가 말린다.

“놔 둬라, 저거 끼리 빨고 핧고 주무르고 난리겠지.”

태완이 눈에 튄 불똥이 이글거리는 불길이 되어 타 오른다.

“그런데 이 추운 겨울 날 한데 나가서 빨가벗고 무신 짓이야 하겠나.”

태완이는 스스로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독한 술을 거푸 몇 잔 들이킨다.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

스스로도 술에 취했다는 것을 느낄 정도이다. “태완이 너 술 취했구나”

신자가 병식이와 함께 술자리로 돌아오면서 탁자에 엎어지다 시피 앉아 있는 태완이를 보고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리는 소리가 자신을 놀리는 소리로 들렸다.

“야, 누가 술이 취했다고 그래” 태완이는 신자 앞에서 술에 취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

“나, 술 안 취했다.” 비록 자신이 짝사랑하는 신자가 이미 병식이의 애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연인 사이인지 아니면 그냥 모처럼 만난 국민학교 동창이고, 그 동창이 군대에 간다니까 측은해서 과잉행동을 하는 것인지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태완이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화가 나더라도 속으로 삭이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어느 순간 도저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화를 낼 때가 있다. 신자나 병식이도 태완이의 그런 성격을 잘 알고 있는데 오늘은 둘이서 태완이의 화를 돋구기로 작정을 한듯이 눈꼴사나운 행동을 하고 있고, 태완이는 그런 행동을 보면서도 속으로만 화를 삭히면서 술만 마시고 있었던 것다.

그런 태완이에게 신자는 또 속을 긁는 말을 한다.

“그렇게 얌전하던 네가 술고래가 되었네, 얌전하던 네가 좋았는데, 그렇게 술 마시는 남자는 싫다” 고 하면서 병식이의 어깨에 자신의 몸을 기대는 시늉까지 한다.

태완이는 그런 비아냥을 듣고도 직접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태완이는 스스로도 신자가 자신을 시험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신자의 사랑을 차지하려면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신자가 어깨를 기대는 시늉을 하자 병식이는 자랑스러운 듯이 신자의 몸에 더욱 밀착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려 준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태완이는 병식이가 자신의 사랑을 앗아간 강도나 도둑으로 보였다.

이 상황에서 태완이는 학교 다닐 때의 기억이 퍼뜩 떠 오른다.

“야, 신자야 니 우리가 국민학교 5학년 때 읍내에서 집까지 걸어 간 거 기억나나?, 그것도 한밤중에, 그 때 우리는 둘이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아이가, 나는 그 때부터 한 시도 니를 잊은 적이 없다. 니도 내를 좋아했다 아이가” 태완이는 신자에게 말 하였지만 사실은 병식이에게 신자와의 관계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그 말을 들은 신자는 한참 기억을 더듬다가 갑자기 깔깔 거리면서 웃기 시작하더니

“태완이 너 정말 바보구나, 우리가 국민학교 졸업하기 전에 읍내에 나가서 만화를 보다가 집으로 올 때 내가 같이 걸어가자고 한 것은 그 때 내가 차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 한테 차비를 빌려 달라는 말은 하기가 싫고, 혼자 걸어가기는 너무 무섭고 해서 내가 마지막까지 남은 니한테 같이 걸어가자고 한 것뿐이다, 그걸 가지고 내가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면서 태완이와 병식이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또 다시 깔깔 웃는다.

“아이고, 이 바보 맹추야”하고 놀린다. 폭탄 같은 신자의 말은 태완이의 귀에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는다. 태완이는 다시 신자에게 말을 한다.

“그라고 니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내가 서울에 가서 종로, 명동, 남대문 구경도 하고 남산까지 올라갔다 아이가?”

“그건 니가 서울에 온다고 편지가 왔길래 내가 하루 같이 놀아 준 것뿐이다. 니는 서울 지리를 하나도 모르고, 또 나는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시간이 나서 그냥 한 번 서울 구경을 시켜 준거다.”

뭐가 뭔지 뒤죽박죽이 되어 혼란스럽다. 신자는 자기를 사랑하는데 병식이가 신자의 사랑을 앗아간 것이고, 병식이가 옆에 있으므로 신자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신자의 그 말은 청천 하늘에 벽력이었다. 태완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사나이 가슴을 그렇게 울렁거리게 만들었고, 10년 가까운 세월을 짝사랑하게 만든 그 행동이 겨우 차비가 없어 같이 가 달라고 한 것이었다니...”

친구들은 태완이의 이러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일이면 군대에 입대하여야 하는 병식이와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식도 없던 신자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신나게 떠들어대고 노래를 부를 뿐 어느 누구하나 태완이를 안중에 두는 사람이 없다.

태완이는 아무도 모르게 주루룩 눈물을 흘린다. 마신 술이 금새 눈물로 바뀌어 흘러나온다고 생각했다.

술이 눈물이 되어 금새 밖으로 빠져 나오니 더 마셔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신자는 병식이와 함께 은희가 부른 “사랑해”노래를 합창한다.

둘이서 화음까지 맞추는 것을 보니 한두 번 같이 부른 노래가 아니다. 태완이는 그 노래가 듣기 싫어 귀를 꼭 막은 채 눈을 감아 버린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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