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정치학 박사
전 주중국대사관 공사
통일지도자 아카데미 부원장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자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와 괭이를 들고 달려 나왔지만 늑대는 없었다. 거짓말을 한 양치기 소년은 재미가 있어 몇 번을 속였다. 어느 날 정말 늑대가 나타났을 때, 양치기 소년의 다급한 외침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양들은 모두 늑대에 잡아먹혔다. 거짓말을 자주하면 신용을 잃어버린다는 이솝우화의 경고성 이야기이다.

북한은 노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이 지난 64일 탈북자 규탄 담화를 발표한데 이어 대적 행동의 행사권을 군 총참모부에 넘기겠다(6.13)고 밝힌 이후 16일 오후 2시를 기해 남북한 대화와 협상의 상징인 개성 소재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그간 중재자 론을 내세우고 미국과 북한을 오가며 북핵문제 해결을 중재해 온 문재인 정부에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북측의 의지가 표시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623일 발간된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존 볼튼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은 북핵 및 북한문제에 대하여 한국, 북한, 미국의 3국 정상간 협의내용 등 외교적으로 움직인 비공개 사실들을 공개하여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가기밀에 해당할 수 있는 민감한 내용도 있지만 그것은 법적인 다툼의 사안일 뿐이며, 내용의 대부분은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일부 내용이 다소 주관적인 의견을 담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회고록 전반에 담긴 행간의 뜻은 분명히 전달되고 있다. 그간 언론기관을 통해 선전해온 문재인의 평화프레임과 중재자 노릇은 일단은 거짓평화와 인정받지 못하는 무면허 운전자의 운전행위로 드러났고 이를 미북 모두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표출된 이상 향후 중재자니 운전자니 하는 문 정부의 대북정책 논리가 더 이상 국제사회와 북한에 통하기 어렵게 되어 남은 임기동안 남북한 간 교섭이나 협상이 원만히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의용 안보실장이 사실왜곡이니 외교결례니 하며 반박하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미북 모두 문재인 정부를 불신하고 있음이 드러나 국제사회에서 문재인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셈이다.

볼턴의 회고록이 공개한 핵심은 3가지로 나타난다. 우선 문 정부가 북한의 의사를 미국 측에 과장 전달하여 배달사고가 발생하였고 이후 미측과 북측의 반응에 거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201848일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제안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발표했으며, 이어 정의용 안보실장은 54일 백악관 안보보좌관 볼턴에게 김정은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동의하도록 우리가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한다. 우리 측이 김정은에게 무슨 말을 건네어 유도했는지는 모르나 그 내용대로라면 트럼프에게는 달콤한 얘기다. 그래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이후 북한의 행동은 비핵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속은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다음은 3차례의 미북 정상접촉 시 문 대통령이 끼어들려 했으나 미북 모두 원치 않았다 한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2018.6.12.) 준비 차 김정은의 친서를 들고 백악관을 찾은 김영철은 ·미 정상회담인 만큼 남한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으며, 특히 3차 판문점 미북 정상회담(2019.6.30.)시는 미북 모두 문 대통령의 참여를 불원하였지만 문 대통령은 초대받았다고 억지 부리며 판문점까지 갔다가 트럼프가 김정은의 판문점 도착을 맞으러 건물을 나갈 때 따라 나서다가 미국 경호팀의 저지로 회전문 사이에 끼어 있던 장면도 연출되었다. 3번째 핵심은 문 정부가 종전선언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가 종전선언이다. 노딜로 끝난 2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 언론들은 마치 선전기관처럼 앞 다투어 종전선언 문제를 집중 홍보한 바 있다. 사전에 회담 당사자들과 약속이라도 해놓고 진행되는 것 같았다. 3차 미북 정상의 판문점 접촉 이후 문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 양국이 사실상 적대관계의 종식을 선언한 것이라고 서둘러 거론하였지만 미북 간 적대관계는 갈수록 긴장관계로 빠져들고 있어 종전선언은 이미 물 건너간 편이다.

문 정부는 그간 국내의 모든 정책을 대북문제에 빗대어 수립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볼턴의 회고록을 통해 남북평화 쇼가 폭로된 이상 모든 정책의 근간이 되는 대북정책에 큰 앙금이 생긴 것이다. 향후 국내정책마저 이상하게 밀어붙일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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