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하영갑
시인, 수필가, 이학박사
시림문학회 회장

  “따르릉~!” 아침부터 전화다. 꽤 바쁜 부탁인가 보다. 우리는 생활이 바쁘다 보면 급한 것과 중요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제법 통화 시간이 길다.
“아~! 그래, 그 사람! 그 사람 같으면야 부탁해 보지.”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니까.
“아니, 그런 것쯤이야 너무 걱정 말게. 암~ 그렇지, 잘 알고말고.”
“음~ 그 사람 나 후배야.” 때로는 “뭐라고? 그 친구? 내 절친 동생이야.”
“그럼~, 그 친구 왕년에 나랑 술깨나 마셨지.”
“야~ 그 사람 참 멋쟁이일 뿐만 아니라 일 뒤끝 깨끗하고.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지. 기다려 보게 잘 될 거야.” 통화 내용이 누가 들어도 통쾌하고 참 시원하다.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 사람에게 부탁하면 안 되는 일이 없을 듯 하다.

  오지랖이 넓거나 사회활동이 많은 사람이 자주 하는 말 중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
“잘 아는 사람”이다. 학교 선 후배, 고향 사람, 직장, 지인, 지역사회 유명 인사 등. 알고 지내는 사람이 참 많은 이가 더러 있다. 이는 정말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내가 어려운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부탁한 일에 대해 결코 쉬운 답을 얻어내기란 만만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자신의 이해(利害)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실상(實像)이 아닌 허상(虛像)의 인연(因緣)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인지도를 얻거나 높이기 위해 쉽게 대답하는 사람.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대체로 이런 사람은 여러 단체에 소속되어 있거나 장래에 다른 꿈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잔디나 질경이가 비를 바라지 않고 자라듯. 새벽닭이 맑은 날 흐린 날 분별 않고 동이 틀 제 시간이면 철저히 울고 새날을 맞듯이, 아까시나무가 가깝게는 뿌리 번식. 멀게는 종자 번식을 혼용하듯. 혼자 힘으로 일하고 살아야 제대로 살아가는 법이니 제발 무엇에나 누구에게 바라지 말자. 바라니 실망이 크고, 바라니 약해지며 게을러지거나 무지(無知)해지지 않던가. 이걸 모르고 제 마음대로 살다 보니 제대로 된 삶을 유지하지 못함은 물론 큰 후회와 아쉬움까지 매달려오지 않던가.

 하늘, 땅, 물에 사는 하고많은 숨들. 개별마다 숨 터가 다르고, 사는 법이 다르듯이 인간 역시 개개인이 서로 달라 가슴 열고 함께하기란 참 어렵기도 하다. 앞마당이 지저분하면 개울이 더러워지고 개울이 더러우니 푸르렀던 강 바다마저 쓰레기 천지로 변하니 질병, 기후 모두 이상해져 사람 살기 더욱 힘들지 않은가.
  진정 내가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나 자신도 나를 정확히 모르니 이를 어찌하랴. 하지만 그래도 ‘잘 안다는 사람’이 부모 형제나 배우자다. 그런데도 우리는 ‘잘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잘 아는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고 일해 온 사람. 극한 어려움을 함께해 본 사람, 예컨대 수 십 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한 친구나 직장 동료를 ‘잘 아는 사람’이라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저 ‘좀 아는 사람’을 ‘잘 아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말자. 안지 오래되었다고 ‘잘 아는 사람’이라 하지 말자. 그에게 참으로 사욕 없이 대해 왔으며, 서로 무엇을 얼마나 진심으로 도우고 살아 왔는가를 생각해 보자.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덕(德)을 쌓은 사람이리라.

  오늘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그대가 만나는 사람마다 분석해 보라. 나를 만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내가 상대방을 만난이유는 또 무엇이었는지. 정말 필요와 아픔을 함께 해 주고 위로와 위문해 주는 사이가 아닌 대부분 “‘보리’ 주면 ‘외’ 안 줘?”하는 식이었을 것이다. 각박한 오늘 또 싱거운 하루로 지나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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