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민주 좀 봐주세요.” 2학년 민주가 선생님과 함께 갑자기 찾아왔다. 돌봄교실 활동에 적응이 안 되어서다. 민주를 위해 미리 준비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난감하다. 여러 가지 미술 활동 도구들을 챙기고 정리하는 중이었다. 자투리라 버릴까 하던 재료를 내밀었다. “민주야, 이걸로 무얼 만들 수 있을까?”두터운 마트지와 라벨지, 우드락 등을 내미니 아이는 가위와 테이프를 달라고 한다. 집을 만들고 싶단다. 바닥에 우드락을 깔고 종이를 이리저리 잘라 울타리를 만든다. 금방 싫증을 내고 그만둘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자기
한 생을 호미자루 들고흙 속에서 자식들 영글어가는 재미에 살았습니더청춘이 닳아헝겊조각이 되어도구멍 난 자식들 메워 줄 곳 살피며 살았습니더알토란같은 자식들한테무지렁이 같은 어미모습부끄럽게 들킬까봐산송장 같이 살았습니더안 죽는다는 말 빈말이고늙어빠진 질긴 목숨 어찌할 재간이 없으니어쩌던지 염치없이 요양병원에 누워있지 말고자식들 애태우지 말고사는 날까지 몸성히 살다가미련 없이 곱게 따라 나설 테니자는 잠결에 영감 곁에 가게 해주이소부디 자는 잠결에 가게 해주이소.
“겨울이 깊으면 봄이 가까이 온다.”영국 시인 셀리의 시로 희망의 봄을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한다.우리나라에도 봄을 노래한 시가 많다. 첫째로 창마 유치환의 시 춘신(春信)이 유명하다.“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사이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러 나왔느뇨!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때를 아쉽게도 한들 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
멍 때리기!컴퓨터에 휴지통 버리기를 하듯, 때로는 복잡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다 쏟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여행이 힐링의 명 처방이라는 생각이 든다.귀가 순해져서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는 이순(耳順)을 앞두고, 내려놓기 연습의 목적으로 동양의 그랜드캐니언 두바이 사막체험을 하고 왔다.타이어의 공기압을 빼는 것으로부터 사막체험은 시작된다.사륜구동 지프로 끝없는 모래펄 위를 롤러코스터 타듯하며 사막 산맥을 거침없이 질주로 춤추듯 몇 바퀴를 부드럽게 돌다 다시 모래 언덕을 차고 올라간다.….다시금 내리막 모래사막을
“선생님, 차 한잔하러 올래요?”돌봄교실에서 근무하는 허영옥 시인님의 초청이다. 점심 빨리 먹고 돌봄교실에 갔다. 아이들은 강당에 놀러 가고 아무도 없다. 허 시인님이 작은 가방을 내민다. 정성이 가득 담긴 에코백이다. 그 가방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이라는 캘리글과 함께 여뀌 몇 낯이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너무나 예쁘다. 따뜻한 차의 향기에 젖는다.“어느새 우리가 몸살 앓는 시기가 된 거죠? 짝사랑 때문에.”교사들은 연말이 되면 내년에 어디로 떠나야 할지 갈피를 잡느라 마음이 뒤숭숭하다. 이별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내년
가만히 있어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일 주일이 후딱 일 년이 훌쩍. 인생은 참 짧다라고 푸념아닌 푸념으로 하루가 25시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지난 나날들. 문득 우리 인생 사이사이에 쉼표가 필요함을 느끼면서 취미생활, 자기계발, 또는 좀 여유로운 삶이 없을까 고민도 해봤지만 보건진료소장으로 시골에만 머무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줄 알았다.어느 순간 직장생활하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으니 견디고 회복하는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악기를 하나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어릴 적 불어대던 하모니카의 긴 호흡이 생각이
당신은 무엇을 하시렵니까?아직 못 찾앗나요?지금껏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나요?무엇이 맛있는지무엇하고 싶은지어떤 것이 의미 있는 일인지아니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구분하지 못합니까?그렇거든 차라리 혼자멍때리고 있어 봐요무겁고 외로운 밤내일이 죽음을 앞둔 날이라상상해 보세요그러면 곧 알 수 있으니까요
지난 오월,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한 논개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진주검무를 하는 역할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논개의 행장을 보고하는 글을 낭독하기로 한 것이다.쪽머리를 짓고 고운 한복을 입고 특별한 화장도 하고 보니 내가 딴 사람이 된 듯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긴 한복을 입고 진주성 풍경을 바라보며 내려왔다.“아이고 옴마야.”비탈길을 내려오다 치맛자락이 밟히면서 시멘트길 위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가 다 깨진듯하다. 급하게 짚은 손가락도 욱신거리며 온몸이 산덩이가 되어
강물은 꽁꽁 얼어있었다. 설날이 다가오면 여자들은 방망이로 얼음을 깨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에 삶은 빨래를 두드려 이불호청을 빨았다. 빨랫돌은 반쯤 물에 몸을 담근 채 언제나 우리를 반겨주었다. 가끔 비위가 틀어져 무너진 빨랫돌도 있었고 저만치 돌아앉은 것도 있었다.반질반질한 흙길로 내려서는 겨울 강은 조용하여 저 혼자 깊어지다가 말이 없었다. 그런 날은 강이 무서웠다. 반짝이는 서릿발 선 아침 강가에 까치들이 보리밭에서 강둑으로 뽕나무로 옮겨 다니며 시끄럽게 깍깍거렸다. 왜 그러는지 지금도 모르고 그때도 모르는 일이다.천왕봉은
이사한 기념으로 꽃을 받았다. 친구의 정성이 고마워 시들지 않게 하려고 정성을 쏟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달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다. 꽃이 문제였다. 남에게 줄 수도 맡길 수도 없으니, 버리려니 아깝고 그렇다고 두고 가자니 내가 돌아올 때쯤이면 꽃은 고사하고 물도 썩어있을 것이었다. 정성 들인 것을 내 손으로 버리게 되는 게 어디 이 꽃 만이랴만…….반년 만에 집에 왔다. 친구가 찾아왔다. 자동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점심을 먹고 진양호 호반을 한 바퀴 돌자며 차를 몰았다. 호반을 반쯤 돌았을까, 길가에 당산처럼 생긴 아주 조
3년 전 남편의 퇴직과 함께 모든 도시 생활을 접고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 하동으로 이사를 왔다. 텃밭을 가꾸며 자급자족하고 싶었다. 채식하며 다이어트도 하고 싶었다. 문제는 달걀이었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달걀은 먹어야겠기에 닭을 키워보자고 했다.“우리가 엄마 닭 해볼까?”남편은 전공을 되살려 부화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스티로폼 상자에 자동 전열장치를 만들어 붙이고 습도조절은 내가 가끔 해주는 거로 했다. 부화기가 완성되어 인터넷으로 유정란을 사들여서 넣었다.텃밭의 한쪽에다 닭이 살 집을 만들었다. 울타리를 치고 철망을 사다 씌웠
오늘이 설날이다. 미국에서 맞은 한국 설날이, 어디가 좀 이지러진 느낌이다. 딸이 출근하면서 저녁에 초대했다고 8시에 맞춰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시간이 되어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린다. 9시가 되어서야 딸의 친구들이 왔다. 저녁 시간이 늦어 배가 고팠던지, 음식이 맛있다면서 떡국이랑 많이들 먹어주었다.상을 물리자, 저희가 설거지를 한다. 나는 보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싱싱한 때가 있었는데. 설거지를 마치고는 배가 불러 소화를 시켜야 된단다. 소화를 시키는 데는 고스톱이 제일이라면서 설날이라서 기쁜 마음으로 한번
굵고 짧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33살까지 살기로 했다. 큰 별이 되어 반짝 빛나다가 아침이슬처럼 사라져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80년대 원불교 청년들은 이 시대의 앞잡이 꾼이었다. 데모하는 곳마다 앞에 서서 태극기를 들었던 우리였다. 제5공화국 말기, 629선언을 끌어냈던 주역이다. 교대 다니는 나는 ‘민속예술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꽹과리를 두들겨댔다. 밤새워 마르쿠제를 공부하고 종속이론을 익혀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데모하다 잡혀간 원불교 후배는 데모를 막는 전투경찰이 되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행정가들은
구구단 외우기를 잘 못 하다 보니 4학년인 민주는 기본 곱셈과 나눗셈이 잘되지 않는다. 수학 시간이면 거의 그림 그리기를 하거나 수업 방해 행동을 하기도 한다. 구구단 표를 주고 계산기를 주면서 계산 원리를 알게 했다. 신이 난 민주는 ‘수직과 평행’을 배우는 시간에도 재미를 붙이며 열심히 참여했다. 다음날 복습 시간에 민주가 전날 배웠던 것을 발표했다.칠판에 그어진 수직관계인 선을 보고 ‘평행’이라는 것이다. 나름대로 논리적인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수학을 잘하는 남자아이 만수가 이에 대해 반박을 했다. 하지만 말을 잘하고 야무
일요일니까 놀러갈까?“응 엄마, 일요일은 어디에 살아?”“아니 요일은 사람이 만든 거란다”“지구에 살아?”“잘봐, 월,화,수,목,금,토일...”손가락을 접어 보였더니“아, 일요일은 손가락에 사는구나”민이가 신기한 듯 제 손가락을 구부렸다 편다태초에 하나님은 첫째날 낮과 밤을 만드시고그리고 또 자꾸자꾸 만드시고이윽고 여섯 째 날에 자신의 형상을 닮은인간을 만드시고 나서아이의 일곱 번째 손가락에서안식을 취하셨나니.
봄꽃 만발하니 꿀벌들의 축제가 소리 높여 벌어진다. 가지마다 하얀 꽃잎 위 노란 꽃가루가 벌들의 날개 짓에 힘주어 추는 춤. 이런 봄 ‘코로나19’로 제대로 맞을 수 없어 오갈 데 마땅찮고. 그 동안 가족 간의 짧은 만남이 긴 동거 되어 지루함과 불평불만 갈기를 넘게 되니 함께 할 마음조차 없어져 떨어져 살자하고, 마침내는 헤어지자 한다. 먹고 자고 움직임은 생명체의 기본인 것. 먹는 것도 편하게 먹어야 적게 먹어도 마음이 편할 것이며, 잠자는 것도 마음 이 편하고 온 습도가 맞아야 편한 잠을 잘 수 있는 법.
이 말은 까불면 낭패(囊敗)를 본다는 말이다. 옛날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농작물을 수확한 뒤에 쭉정이를 걸러내기 위해 쓰던 기구가 ‘키’였다. 탐스럽게 영근 곡식들을 알차게 선별하여 식량으로 혹은 곡물시장에 수매하기 위한 마지막작업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체이’(키). 때로는 오줌싸개 엄마들의 벌칙 도구로 쓰이기도 했지만 그것의 기능과 쓰임새는 확실했고 대단했다. 하지만 날씨나 병충해로 인해 곡식의 수확량이 감소될 우려가 보일 때는 농사 짖는 일꾼들이 주인으로부터 새경 받아가기가 미안하지 않고
오늘은 맑은 물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만나면 그의 진정한 마음과 움직임의 이유를 알고 싶다. 하지만, 물은 말이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보고 느끼라는 뜻인데 내가 가진 것은 비좁고 작은 머리와 생각이라 왜 낮은 곳으로, 막히면 둘러가고 가르면 크거나 작게, 아니 국수발처럼 가는 물줄기로 흐르는가를. 심지어는 흐르다가 뜨거운 햇살 만나면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 하는 변장술도 부릴 줄 아는 ‘물’임에도, 위로 오를 줄을 모르고 오직 주위의 환경대로 흐르거나 스미며 함께하는 수줍은 삶만 고집하는 그 깊은 마음을 나
햇살 퍼진 양지쪽 논두렁에 모자에 업 수건까지 눌러쓴 아낙의 손에는 벌써 봄을 도려내는 귀여운 칼이 닭 부리 되어 짙은 쑥 냄새 맡으며 한나절을 쪼고 있다. 천연염색 집이라 농약은 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 지난해에 다녀갔던 그 팀인가 싶다. 세 사람이 동과 서로 나뉘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열심이다. 성급한 나는 괜히 두릅 눈 튀기를 기다리며 며칠이나 더 기다려야할지 친구 아들에게 묻기도 한 작년이 생각났다. 무척이나 봄 향기를 기다리는 듯. 아니, 어쩌면 봄에 느끼는 포근함도 그렇지만 더욱 그리운 것은 몇 해 전 멀리
날마다 찾아드는 새 날 속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이 잘 분별되지 않아 허덕이는 인간을 제치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계절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지라도, 정말 궂은 날에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날, 피곤해 힘든 날이면 밤낮을 분별 않고 아늑하게 쉴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다운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날.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잘 할 수 있는 그런 시간과 날이 다가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아 만물이 약동하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