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Kluge)

“선생님, 민주 좀 봐주세요.” 2학년 민주가 선생님과 함께 갑자기 찾아왔다. 돌봄교실 활동에 적응이 안 되어서다. 민주를 위해 미리 준비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난감하다. 여러 가지 미술 활동 도구들을 챙기고 정리하는 중이었다. 자투리라 버릴까 하던 재료를 내밀었다. “민주야, 이걸로 무얼 만들 수 있을까?”

두터운 마트지와 라벨지, 우드락 등을 내미니 아이는 가위와 테이프를 달라고 한다. 집을 만들고 싶단다. 바닥에 우드락을 깔고 종이를 이리저리 잘라 울타리를 만든다. 금방 싫증을 내고 그만둘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구상하면서 얼렁뚱땅 만들고 세우며 집을 지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몰두한다. 두 시간이 지나도 몰입한다. 그러나 노력한 결과는 다 쓰러져 가는 허술한 집 한 채다. 허물어진 울타리와 지붕 등 어느 하나도 반듯한 게 없다. 기둥도 기울어져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을 정도다. 그래도 애써 만든 작품이라 무얼 만들었는지 물어보며 칭찬과 감탄을 해주었다.

“이건 의자이고요. 식탁이에요. 이건 출입문이고요. 조심히 열어주세요. 문이 부서질 수 있어요.”

민주는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지나가는 친구들도 민주의 작품이 멋지다고 칭찬한다. 의외다. 어른이 보기엔 버리고 싶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것도 집이라고 만들었느냐는 핀잔을 하지 않았다. 진열대 위에 올려 놓고 귀한 대접을 하는 것이다.

다음날 다른 친구들의 반응도 의외였다. 이 집에 관심을 보이며 아이디어를 더해 주었다. 자기의 마스코트 인형을 놓으며 손님 왔다고도 한다. 어설픈 집 한 채가 귀한 놀이터가 되었다.

민주의 집을 보니 얼마 전에 읽은 ‘클루지(Kluge)'란 책이 떠오른다. ‘클루지(Kluge)'란 어떤 문제에 대해 세련되지 않고 서툰,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말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 맥가이버가 ‘클루지(Kluge)'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재빨리 도망치기 위해서 절연 테이프와 고무매트로 신발을 급조하는 장면 같은 것이다.

1970년 4월 아폴로 13호의 달 착륙선에서 이산화탄소 여과기가 잘 작동되지 않았다. 긴박한 상황에 우주비행사들은 비닐봉지와 마분지, 양말 한쪽으로 투박한 여과기를 만들어내어 살아났다고 한다. 어떤 긴박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으로 그들은 살아난 것이다. 발명가적 사고도 비슷하리라.

학교 교육에서 ‘클루지(Kluge)' 할 수 있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길러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는 창의성 교육과 연결된다. 아이들은 쉽고 편한 활동에 몰입하기보다 다소 부족하고 모자란 재료나 미션으로 친구와 함께 낑낑거리며 도전하는 활동을 즐겨한다. 민주의 집처럼 어설프고 못난 결과물이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 다루기가 까다롭고 불편한 재료가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고민할 때,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넉넉히 주면서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교사나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음껏 ‘클루지(Kluge)’ 할 수 있는 학습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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