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하고 청백한 관리를 확인하기 위하여 조선 왕조는 과거제도를 실시하고 과거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관리가 될 수 없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과거에는 문과가 있고 무과와 잡과가 있었는데, 문과가 제일이요, 무과와 잡과는 양반이 시험보기를 창피하게 생각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심지어 사대부 집안에서는 무과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했다.

문제는 바로 이 무과에서 부정부패가 싹트기 시작하여 나아가서는 과거제도 전반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있다. 무과는 태종 8년에 처음 설치되었는데 문과를 일명 용방(龍榜)이라 하여 임금이 합격자에게 일산(日傘)을 하사하였다.
무과는 호방(虎榜)이라 하여 그 합격자에게는 검은 깃발을 하사하였다. 이것은 문과와 무과를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태종의 이 같은 뜻은 세조 때 가서 무너지고 말았다.
세조는 지방을 순시하면서 가는 곳마다 무과시험을 쳐서 일 년에 무려 1천8백 명이나 되는 무사를 뽑아 무과합격자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무과에서도 문과처럼 초시가 있어 활 쏘는 것으로 점수를 매겨 과녁에 다섯 발 중 세 발을 맞추어야 합격했으나 뒤에는 한 발만 맞추어도 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초시합격자는 이듬해 본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활쏘기와 말 타고 창 쓰는 시험이 있었다. 이 실기시험에 합격한 뒤 각종 병서(兵書)를 읽고 필기고사를 보는 것이 원칙이고 총점으로 합격자를 가렸다. 1년에 20여 명밖에 뽑지 않았으니 여간 어려운 시험이 아니었는데 세조가 한꺼번에 2천 명 가까운 사람을 뽑는 바람에 말도 못 타고 활도 못 쏘는 엉터리 무사들이 양산되었던 것이다.
세조는 말 대신 소를 타고 활을 쏘아 무과에 합격한 선비를 보고 어이없어했다. 세조는 제일 말석으로 합격한 선비를 불러 물어보았다.

세   조:자네가 무과에 합격하였는데 이 세상에 자네보다 못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합격자:있습니다.
세  조:누구인가?
합격자:다음 번 무과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하는 사람이 저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세조는 그가 하도 재치있게 대답하는지라 크게 웃으면서 시험 삼아 요직에 앉혀 보았더니 의외로 일을 잘해내더라는 것이었다.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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