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하영갑
시인, 수필가, 이학박사
시림문학회 회장

버려두면 돌이 되고 안보면 남이 되며 / 남이 되면 가시 생겨 가까이도 하지 못해 / 눈길조차 줄 수 없네.
갈 길 가려한들 길은 보이지만 / 걸을 힘 없다보니 간간이 주저앉아/ 먹을 것 찾아 드네.
할 일 하려 한들 혼자하기 힘들어서 / 같이하자 종용하니 우선은 좋았지만 / 품삯 줄 여력 없어 빈말로 돌아 서네.
이도 저도 하지 못해 세월지고 걷다가 / 자수성가 하였건만 / 탯줄가족 무관심에 자식 까지 멀어지네.
해짧은 엄동설한 찾아 올이 없어지고 / 더듬어 지은 밥상 마주 할 이 없는 신세 / 이럴 줄 알았으면 / 사지육신 성한 그 때 밥 짓고 빨래하여 / 밥상머리 앉는 시간 오래 오래 만들어서 / 가는 길 일러주고 정 잇는 법 가르칠걸.
어두워진 기억 속에 사라져간 인연들 / 마음 바삐 찾아본들 구들목은 간 데 없고 / 피골이 상접하여 기력 떨어지니 해마저 눈을 감네.

아침 햇살이 퍼지면 줄지어 나타나는 어르신들. 실버카 앞세우고 허리 굽혀 마을 경로당으로 걸음 하신다. 내 어릴 때만 해도 젊은 아낙이었던 어머님들, 내 늙은 줄 모르고 “언제 저렇게 늙어 왕할머니가 되었을꼬?” 하는 마음에 가슴이 저민다.
주간에 어르신들이 지낼 수 있는 난방비 및 식대 등은 정부에서 노인회를 통하여 지원되는데, 지원금만으로는 부족한 실정이라 마을 주민들의 협조 없이는 어렵다.
심지어 점심 지어 먹는 밥반찬마저도 대부분 영양가 있고 입맛에 맞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우선 부드럽고 넘기기 좋은 음식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이일을 어쩐담.
 
“아이구, 아이스케끼 사주락꼬 우는 놈 달갤락꼬 피 보리 한 되 퍼내다가 시어미한테 쫓겨 날 뻔도 했던 그 시절 참 말도 마라.”
가난과 무지로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여장부!
당시에는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 채, 급한 대로 자식들 주린 배 채우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 구정물에 손 부르터가며 남의 집 밭 매주고 불철주야 노력하신 가족의 방패막이. 이제, 씹기 어려워 맛난 음식 먹을 수 없고, 눈 어둡고 귀 어두워 보고 듣기 어려우니 말 붙일 이 없어지고, 할매 냄새 난다고 곁에 올 이 없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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