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하영갑

시인, 수필가, 이학박사
시림문학회 회장

  아이일 때는 ‘젖무덤’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칭얼대었고, 청소년기에는 ‘잠 무덤’에서 깨어나지 못해 ‘잠충이, 잠보’라고 불리어지도 했다. 또한 ‘공부 무덤’에서 헤어나지 못한 성장기 때에는 방학을 마치고 등교할 시기에 물라보게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자란 친구들이 많았다. 중년을 지나 예순이 넘어 새벽잠이 없어지거나 초저녁잠이 많아지면 대체로 일어나서는 안 될 시간에 깨게 된다. 벽에 걸린 거울에 자신의 늘어지고 쳐진 얼굴을 옆으로 위로 당겨 올려보기도 하지만 신통찮다. 또한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의 관심에서 살짝 멀어지고 제법 많은 주름이 자신을 범하기 시작한 시기다. 모처럼 모인 모임의 등산길에 경사길이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난간을 잡거나 막대기를 짚고 싶다면 나이 들어감을 인지하게 된다.

   깔끔한 셔츠에 넥타이 매고 찰랑 찰랑한 슈트바람으로 드나들던 직장의 하고 많은 ‘일 무덤’에서 나와 텁수룩한 머리에 짙은 잠바 걸치고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 채 멍청하게 하루를 지내는 초로(初老). 어느 날 갑자기 주위에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뭔가 ‘지키려’ 하고 ‘모으려’ 하며, ‘남기려’하는 마음에 무리한 일이나 걱정이 커진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아아~내가 이제 서서히 늙어가고 있구나.”하고 서글픈 마음을 갖기도 한다.  
 
   TV시청도 개그와 스포츠가 주된 프로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을 보게 되고 ‘세계여행’ 프로에 심취되어 채널이 고정되는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
“그래, 야~ 저기는 한 번 가봐야 되는데, 정말 멋지다.” 하며 마음속으로나마 꿈같은 계획을 세워보기도 한다. 가끔 “까톡 까톡!”하고 소리가 나면 날래게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는 빙긋이 웃는 아내. 귀여운 표정과 행동으로 할미의 마음을 사로잡는 세 살짜리 손자 녀석을 보고는 “우찌 저리 귀여브꼬~” 하며 미소 가득한 얼굴이 보기 좋다.  둘째 손자가 태어 난 이후의 모습은 더욱 우스꽝스럽다.
“아이고 그노무자석 지 형님하고 꼭 같다. 참 씨는 몬 속이는기라. 며느리하고 손자한테 먹일 반찬은 뭘로 준비 하는기 좋큰노?”이 세상 할매가 모두 하는 소리를 해 가며 그저 싱글 벙글 한다. 아내가 평소에 팔다리, 어깨, 목, 허리 안 아픈 데가 없다고 야단을 해도 동영상으로 전송되어 오는 손자만 보면 생기가 돌고 기운이 넘친다.

  퇴직이후 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하신 집안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요, 동생! 이제 대종회 참석 좀 해서 종중 일에 관심을 좀 가져 주는 것이 좋겠다. 생각 좀 잘해 봐라.” 하시며 한 참을 종용하다가 전화를 끊으셨다.
“아니, 내가 벌써? 종중 일에?”하는 마음에 한 동안 숨을 멈추었다.
 그 형님의 말씀 중에, 종중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받들고 종사의 갖가지 문제점들을 바로 잡기 위해 또 다른 ‘말 무덤’에 묻히라는 뜻이었다. 이는 나에게 참 중대한 사건이었다.

  해 년을 넘어 세기에 가까워지면 자연스레 다가오는 어두운 구름. 수수 십년 지금까지 꿴 구슬이 윤을 잃어가고 핏덩이 새 얼굴들이 출현함에 거리낌 없이 찾아드는 ‘신체의 무덤’. 언제 어디에 어떻게 묻혀야 좋을 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다. 시원찮은 인물을 석물 세워 무덤 만들기는 과욕이고, 더군다나 세손들에게 유지 관리의 불편함을 물리게 되고. 유골함을 땅에 묻어 작은 표시석이라도 한다면 그것도 장래에는 공해가 될 것 같아 화장해서 그냥 편한 곳에 뿌리라 하고 싶다.
 ‘젓 무덤’, ‘잠 무덤’, ‘일 무덤’, ‘말 무덤’ 속에서 살다가 ‘신체무덤’으로 끝나는 인생살이. 결국 무덤에서 태어나 무덤으로 돌아가는 기쁨과 서글픔의 또 다른 무덤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우주시대에는 이 모두를 하늘에 묻고, 바람에 묻고, 바다에, 별에, 달에 묻는 ‘상상의 무덤’ 앞에서 기쁨의 절을 하며 기도하리라 믿는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