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하영갑

시인,수필가,이학박사
시림문학회 회장
경남생태환경문학회 상임고문
낙동강수필문학회 심사위원

  아침 일찍 집 앞 논둑 풀잎에 촉촉이 내려앉은 이슬, 나의 메마른 가슴을 부둥켜안아 길섶에 앉힌다. 먹고 살기에 찌들대로 찌든 일상,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고 여유롭지 못한 날들. 어떤 연유로 누굴 보고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원망하리.
 세상사람 대부분이 ‘경쟁’이라는 참뜻을 넘어 대범하게도 ‘출산과 할 일’까지도 무너뜨린 채 허상(虛像)과 허욕(虛慾)을 가득 안고 산다.
  유난히 붉게 윤기 나는 촉촉한 입술이 초연(愀然)하게 다가선다.
“앞만 보지 말고, 위로만 보지 말고, 둘러보고 때로는 뒤돌아보기도, 내려다보기도 하며 살라”고.
 무지하게도 딱딱하고 입이 무거운 컴퓨터 자판이 나에게 촉촉한 입김 앞세워 속삭인다.
 “그대는 지금 가까워지고 있는 주검 앞에서 사리사욕에 가득 찬 엉뚱한 꿈을 아무데도 쓸 수 없는 부질없는 꿈을 너무 깊게 꾸고 있다”고.

  많은 노래방이 문을 닫는다. 시린 가슴 벅찬 가슴 기쁨과 환희, 슬픔과 억울함이 공존하는 그 곳. 보이지 않는 그 놈 때문에 또 다른 슬픔의 곳간이 된다. 작은 일터들도 함께 잠긴다. 가족의 마음을 안정시켰던 열정 많은 일 터. 태풍처럼 불어드는 불경기 앞에서는 인정사정없이 외면한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으려 한다. 그 덕에 아들딸이 놀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지만 큰 성장 통을 앓는다. 어미 아비도 함께 앓는다. 이런 고통을 어디서 가리고 지울까 부부가 마주 앉아 노랗게 변해가는 얼굴을 마주하며 한숨만 짓는다.

  더위에 온 몸이 땀 범벅되어 열고 든 욕실. 시원하게 샤워를 마친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중 잡이. 물방울 촉촉하게 머금고 벽에 붙은 거울이 말 한다.
“네 몸 그리도 자유분방하게 변해가는 모습 제대로 보렴. 기교 많고 경륜 많은 화가도 스케치하기 힘들겠다. 들고 난 부위마다 주름진 골골마다 보면 볼수록 한 숨 짓게 하누나. 아무리 골고루 먹어야 건강에 좋다지만 맛도 멋도 배도 부르지 않는 ‘스트레스’ 만은 제발 먹지 마라.”고 일생을 벽에 붙어있는 제 모습은 모른 채 목 놓아 타이른다.

  하루 일과가 끝날 즈음 평소에 편하게 지내는 지인들과 가끔 작은 식당, 커피숍에서 마주 한다. 비록 주류 비주류로 나뉘지만 가슴과 가슴을 오가는 대화는 포근한 구름을 탄다. 평온한 호수 위에서도 배를 거꾸로 가도록 노를 저어가며 웃음보를 터뜨린 적이나, 무슨 장자장손 집지킴이나 된다고 불철주야 허덕였던 무용담. 이 모두가 술잔과 커피 잔에 녹아들 즈음 파란 가을 하늘 코스모스 꽃 날개 달고 뽀얀 뭉게구름에 거침없이 올라탄다. 비록 작은 즐거움이라도 만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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