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사 나들이-40

1762(영조 38) 513, 아침 일찍 영조는 창덕궁 선원전에 행차하였다.

이 날 아침 들보에서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들은 사도세자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지 내가 죽으려나 보다. 이게 웬일인고?” 하며 깜짝 놀랐다.

오후에는 창경궁 휘령전으로 들어오라는 영조의 명이 내려지자 불길한 예감이 든 세자는 혜경궁 홍씨를 불러 아무래도 이상하니, 자네는 잘살게 하겠네, 그 뜻이 무서워라고 말하고는 영조에게 나아갔다.

선전관을 불러 은밀히 무엇인가를 지시한 영조는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여러 신하들도 들었는가? 정성 왕후의 신령이 나에게 변란이 바로 앞에 닥쳤다고 간절하게 말하고 있다며 세자에게 자결하도록 명하였다.

곁에서 울먹이는 신하를 내보낸 영조는 재차 세자에게 자결하라명하였다.

세자는 부왕의 명에 따라 옷을 찢어 자신의 목을 조이고 쓰려졌다.

강관(講官)이 급히 달려 나와 옷을 풀어 주었다.

영조의 명으로 세자가 다시 옷소매를 찢어 목에 감자 강관이 또 뛰어나와 풀어 주었다.

세자는 마지막으로 세손(후일의 정조)과 이별하고 싶다고 부탁하여 세손이 들어왔다.

세손은 영조에게 아비를 살려 주옵소서라며 매달렸지만 영조는 나가라고 엄하게 호령하였다,

세손이 나가자 영조는 또다시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였다.

세자가 옷을 찢어 목을 매고 강관이 달려 나와 풀어 주는 광경이 다시 반복되었다.

이때 휘령전으로 뒤주가 하나 들어왔다. 영조는 세자에게 뒤주 속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였다.

세자는 울며 애원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세자가 뒤주에 들어가자 영조는 손수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잠근 후, 판목을 가져오도록 하여 못을 박고 동아줄로 묶도록 지시하였다.

비참한 날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9일 뒤 세자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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