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
전주대 경영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인산의학 발행인

김윤세
김윤세

 

斜日不逢人 徹雲遙寺磬

山寒秋己盡 黃葉覆樵徑

사일불봉인 철운요사경

산한추이진 황엽부초경

 

해 질 녘까지 걸어도 만난 사람 없고 산사의 풍경 소리만 멀리 구름에 닿을 듯

가을 끝 무렵이라 날씨는 쌀쌀한데 단풍 들어 누런 잎 온 산길을 덮네

 

조선조 문인 석지영石之嶸가을 산을 가다山行는 단풍으로 화려하면서도 저무는 계절의 쓸쓸한 운치가 담긴 11월 산야의 정경이 잘 담겨 있다. 저자 석지영에 대해서는 이 시문 외에는 달리 알려진 바가 없지만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어詩語를 통해 담백한 그의 일면을 짐작할 수 있다.

온 세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에 눌리며 삶의 행태가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다.

사람들은 복잡한 도심을 떠나 타인과 대면할 일이 적은 명산대천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됐고 그곳에서 기대 이상의 위안과 평안을 얻으며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의 초기에는 막연한 두려움 탓에 지리산을 비롯한 전국의 이름난 산길조차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져 지난봄에는 지리산 둘레길이 고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덕분에 산청, 구례, 남원의 온갖 꽃길을 느긋하게 걸으며 형형색색의 꽃내음을 만끽할 수 있었지만 아름다움에 취할수록 이 순간에도 병마와 싸우며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코로나 블루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오르는 일을 생활화해야 한다. 코로나19 위험 수위가 펜데믹으로 치솟든 감염 사태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든 변함없이 여여如如한 모습을 보여주는 산하대지山河大地의 실상實相을 보면서 우리는 작금의 불편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된다.

시정市井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시비비와 번잡함을 떠난 산중의 별천지를 걷는 일은 그저 몸을 고단하게 하는 노동이나 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파란 하늘과 높이 솟은 바위 봉우리, 오랜 세월의 풍상이 밴 낙락장송,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는 청량한 바람, 다정스레 다가오는 새들의 지저귐, 장광설長廣舌로 팔만사천 법문法門을 들려주는 계곡의 물소리가 빚어내는 한 폭의 산수화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치유의 시공간時空間인 것이다.

산중 은자隱者는 하산을 해 복잡한 시정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번잡한 곳에서의 인연과 사연에 얽매이는 일 없이 어서 고요한 산중으로 되돌아오길 기대하며 허정허정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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