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국민의힘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굴러온 돌’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치이면서 갈팡질팡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던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놓고도 결집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자 당 내부에선 소통 부족이 여러 상황 판단을 그르치는 어이없는 리더십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1년 들어 잇따라 나온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위를 휩쓸면서 ‘야권 통합 서울시장 후보는 안철수’라는 대세론이 굳어지는 모양새다. 안 대표는 민주당 지지율 1위인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맞대결에서도 이긴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안 대표가 2020년 12월 “야권 통합 서울시장 후보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그건 그쪽 얘기일 뿐이고…”라며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새해 벽두 쏟아진 각종 여론조사 결과치에 국민의힘 당지도부는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1월 4일까지만 해도 안 대표와의 단일화 여부 질문에 “국민의힘에서 가장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를 만드는 것이 내 책무다. 우리가 정한 룰에 따라 경선 과정을 거쳐서 걸러낸다면 가장 좋은 후보가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1월 5일 KBS 뉴스9에 출연해 “시민들이 단일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국민의힘도 단일화를 해야겠다는 것에 반대는 하지 않는다”며 ‘안철수 불가론’ 입장을 바꿨다. 1월 6일에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선출 경선을 100% 여론조사로 치르는 방안까지 사실상 확정했다. ‘절대 강자’로 올라선 안철수 대표를 ‘빨리 모셔오겠다’는 포석을 드러낸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마음이 급해졌는지 1월 6일 안 대표를 직접 만났다. 하지만 독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앞으로 안 대표를 만날 일이 없다”며 냉랭하게 반응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후보 단일화는 적절한 시기에 얘기하면 된다”고 여지를 남기는 등 냉온탕을 오가는 혼란스런 모습을 보였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안철수 대세론’을 인정하면서도 “솔직히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을 숨기지 않는다. “안철수는 안 되고 우리 식구만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김종인 위원장에 대한 실망감이 역역하다.
당 정책위의장을 지내며 김종인 위원장 영입에 큰 역할을 했던 김재원 전 의원조차 1월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안 대표에게 시선이 가도록 잔치판을 잘도 만들었다. 당 지도부가 당 소속 후보자들을 잡아먹는 이런 선거는 내 생전 처음 본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주자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마저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들어오면 서울시장 불출마, 들어오지 않을 경우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며 조건부 출마론을 내놓았는데 조건부는 또 무슨 뜻이며 서울시장할 때 무상급식건으로 박원순에게 시장자리 빼앗겨놓고 지금 또 무슨소리냐며 당 안팎에서 질타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김 위원장은 안 대표 정계 입문 때부터 그를 지켜봐왔고 실제 잘 알기때문에 안 대표에 대해 선입관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뚜렷한 후보를 갖춰놓지 못하면서 안 대표가 치고 나오는 바람에 국민의힘은 뒤통수를 맞았고 때문에 지금 당 전체가 달랑 3석을 가진 국민의당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라 밝혔다.
2021년 시작과 함께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던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으로 정치권이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웠다. 민주당도 소란스러웠지만, 사면 여부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국민의힘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집약시킬 만한 선명성 있는 논리를 내밀지 못한 채 산탄만 마구 쏟아냈다. 과거 자신의 정치 경력과 관련짓거나 개인 친소 관계를 담은 한풀이성 발언만 토해냈다.
민주당 지도부가 “당사자 사과가 먼저”라는 사면의 전제 조건을 내놓자, 흥분된 반응이 담긴 거친 말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분출됐다. 이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1월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민주당의 조건부 사면론에 대해 “전직 대통령들을 시중잡범으로 취급하는 것이냐”라며 “정치적 보복으로 잡혀갔는데 내주려면 곱게 내주는 것이지 무슨 소리냐는 게 당사자들 입장 아니겠나”라고 쏘아붙였다.
친이계 김기현 의원도 같은 방송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노리개 취급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김 의원은 “사과, 반성은 웃기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박 전 대통령 측도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여겨지는 이정현 전 의원도 “벼랑 끝에 몰린 지지율 반전을 위해 정치화하는 극악무도한 짓”이라고 성토했다.
분위기가 격앙되자 당 지도부는 정리를 시도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자신들이 집권하고 있다고 사면을 정략적으로 활용한다든지 장난을 쳐선 안 된다”며 “전쟁에서 항복한 장수에 대해서도 기본적 대우는 있다”고 말했고, 김종인 위원장은 “대통령이 판단해서 결정하면 되는 것”이라고 언급한 자체가 애매모호 한데다가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선심쓰는척하면서 보수진영의 향후 선거판을 양분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깔려있다고 많은 의혹을 말하는 정치인도 있다.
그럼에도 당 내부에서는 국민들에 다가갈 만한 설득력 있는 ‘정리된 한목소리’가 없었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있다고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하소연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우리 당 소속이었는데 사면 논의가 얼마나 큰 이슈인가. 우리 당으로서는 다시 친이계, 친박계가 나와야 하는 사안이기도 하고, 대처를 잘못하면 우리 당을 지지하는 집토끼들이 크게 실망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당의 공식 입장, 이를 뒷받침하는 대의명분, 향후 대응계획 등 당 지도부의 정리된 의견이 없다. ‘편가르기에 몰두해온 집권세력이 국민 통합을 위해 결단하라’ ‘사면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결단하라’ 등의 정리된 한목소리가 당의 공식 메시지로 빨리 나와야 했는데 각개전투만 벌이며 여당이 이슈를 던질 때마다 매번 이런 식으로 허둥대고 있으니 실망스럽지 않을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승리를 통해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한 밑거름을 깔아 놓아야 할 김종인 위원장이 소통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국민의힘 내부 제언이 많다. 정치판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데 김 위원장은 자신의 경험치에만 기대 자꾸만 개인기로 모든 것을 풀어내려 한다는 불만스런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여당에 판판이 밀리는 원내 상황과 관련해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한 3선 의원은 “주호영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장 7자리를 받자는 쪽이었지만, 김 위원장이 ‘여당 맘대로 하게 다 줘 버리자’고 의견을 내면서 21대 국회는 그야말로 여당의 일방독주가 됐다. 상임위원장 역할이 매우 큰데 여당이 모두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야당은 그야말로 눈뜨고 당하는 신세가 됐다. 3선이라 자리 욕심낸다고 눈총 받는 게 싫어 ‘상임위원장 자리 가져오자’고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이 부분은 너무나도 큰 패착이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따지고 보면 김위원장이 여당 맘대로 하게 내버려둔뒤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것은 목전에 닿은 선거도 그런식으로 할 것 아닌지 의문스러워했다.
김 위원장은 ‘식사 정치’를 통해 당 내부 언로를 열려는 시도는 하지만, 막상 식사 정치에 참여해본 의원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더 많다. 김 위원장의 식견을 아는 좋은 자리였다는 호평도 있긴 하지만 매일같이 열리는 비대위 모두발언 이상의 설명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참석 의원들 의견 개진도 잘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는 증론이다.
김 위원장과의 식사 자리를 경험해본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그냥 밥만 먹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보면 된다. 토론에 이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의원의 지역구에서 나오는 여러 의견이나, 해당 의원의 전문성을 고려해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이를 판단에 반영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인데 이런 것이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리더 한두 명이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당 내부의 집단 지성을 모으는 방식의 힘을 결집시키는 리더십이 나와야 강한 후보를 배출할 수 있다.”며 “정권을 되찾아오려면 당 지도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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