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비용

 

“민주야, 개인정보 이용동의서를 냈니?”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으로 다양한 체험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그때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보험을 챙기거나 활동 참여 의사 등을 묻기 위해 개인정보 이용동의서를 학부모로부터 받아야 한다.

“이거 꼭 받아놓고 행사를 추진해야 합니다. 소송에 걸리면 꼼짝 말고 당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이걸 받아두어야만 행사 진행 허가를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를 다 받아두기가 아주 힘이 든다. 체험학습을 갈 기회는 많은 데 학부모동의서 받기가 참 힘이 든다.

“동의서를 안 내면 행사 참여를 안 시켜 줍니다.”라고 말해야 겨우 갖고 온다.

그리고 수업 틈틈이 동의서를 제출한 아이들의 명단을 조사해야 한다. 예전에 하지 않았던 교사의 잡무 중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도 무시할 수가 없다. 학교마다 개인정보 처리법에 기준하여 개인정보처리 방침을 제정해두고 이에 따라 철저하게 잘 이행하고 있다고 본다. 오히려 지나치게 지키려다 보니 교육의 본말이 바뀌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교육 행사는 한두 시간이지만 계획을 세워 동의서 받는 데 드는 시간이 엄청나다.

이와 관련한 민원에 걸리면 이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최근 들어 학교는 보다 질 높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행사를 계획하여 추진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개인정보 이용동의서를 받아내는 일에 민감해진다. 행사 진행의 찬반 가부보다 더 신경이 쓰여서 때로는 행사를 안 하고 싶어질 때도 많다. 교사를 불신하는 분이 있기에 빚어지는 일이다.

10년 전에 핀란드의 야르벤빠 고등학교를 방문한 일이 있다. 전교생 천 명 정도의 학교에 행정직원은 한 명이고 청소직원 두 명으로 학교가 운영된다고 한다. 각종 교구 구매나 행정적인 일은 교사를 믿기에 알아서 잘 진행된다고 한다.

한국은 도둑이 없는 나라, 택배 물건을 방치해도 아무도 가지고 가져 않는 나라라는 평이 있다. 이는 한국 국민의 신뢰도가 높다기보다 감시카메라가 잘 작동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2016년 OECD 회원국 사회적 신뢰도를 보면 핀란드가 5위로 61.6이며 OECD 회원국 평균이 36.0인 반면에 한국은 23위로 26.0의 평점을 가진 것으로 발표되었다. 국민 4명 중 1명만 타인을 신뢰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사회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지 못해 생기는 비용을 사회적 불신 비용이라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신뢰도가 높아지면 불신 비용이 줄어들고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하고 자식은 부모를 믿지 못하는 사회, 교사가 제자를 믿지 못하고 제자가 교사를 믿지 못하고, 학부모는 교사를 믿지 못하고. 국민은 정부를 믿지 못하고, 정부는 국민을 믿지 못한다, 노사간의 갈등 또한 서로 믿지 못해 생기는 거다. 이런 사회 분위기라면 불신 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교사가 아이들의 정보를 이용해서 무얼 할 수 있을지? 좀 더 믿어주는 교육환경,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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