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박사 조문주 (해인)·초등교육코칭연구소장·2022년 소태산문학상 대상 수상·논설위원(문학)쉬는 시간 종이 친다. 2학년 민주는 오늘도 학교 안 공중전화기를 누르고 있다."엄마, 친구가 나를 째려봤어. 기분이 나빠."전화기 너머 엄마는 속상하다는 투로 대답이 온다. 내가 전화를 바꿔서 엄마에게 일단 내가 먼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수업 마친 후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아이가 친구 관계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란다. 친구들이 아이를 어떻게 대하길래 이런 전화를 받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민주는 쉬는 시간마다 엄마와 통화를 하고 싶어
새벽에 잠이 깬다. 낮에 엄지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발톱 수리를 지금 해야겠다.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의자에 앉는다. 심심해서 책을 펼친다. 어릴 때 받은 상처 때문에 온 생을 아린 마음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동감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니 끝까지 읽게 되었고 어느새 날이 밝았다.“발이 너무 불었나?”부드러워진 발가락을 붙들고 자가 수술을 시작한다. 먼저 커트 칼날을 싹둑 날려 날을 예리하게 만든다. 그 칼끝으로 발톱 한쪽을 조금씩 깎는다. 어느 정도 깎고 나면 나의 강력한 무기인 핀셋을 들
2023년 8.1.~8.12. 한국 새만금에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렸다. 비슷한 시기(7.29.~8.5.)에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는 ‘108차 세계 에스페란토대회’가 열렸다. 두 행사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점이 많아 비교하며 글을 써본다. 이 맥락으로 원불교 이해도 돕는다.먼저, 둘 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스카우트는 1907년 영국의 육군 장군 베이든 초우엘 경이 준비한 야영 생활에서 시작하였다.에스페란토는 1905년 프랑스 불로뉴에서 첫 번째 에스페란토 세계대회가 열렸다. 유대계 폴란드인 안과 의
교육학 박사 조문주 (해인)·초등교육코칭연구소장·2022년 소태산문학상 대상 수상·논설위원(문학) 내가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읍내에 있는 중학교 들어가자마자였다.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반장하라고 지명했다. 성적 1등은 반장이고 읍내 출신이다. 2등인 나는 부반장이다. 한 시간을 걸어 등교하는 촌 출신이다. 읍내 아이들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교무실에서 가지고 온 안내장을 나눠주면 기분 나쁘다며 내 앞에서 종이를 밀어낸다. 돌아서서 다시 주워가긴 하지만 내 속을 긁는다.“네가 인기가 좋아서 부반장이 된 게 아니잖아?
교육학 박사 조문주 (해인)·초등교육코칭연구소장·2022년 소태산문학상 대상 수상·논설위원(문학) “선생님, 제 동생의 탄원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오래전부터 상담코치 받던 내담자의 요청이다. 남동생이 교도소로 가게 되었단다. 기꺼이 써 주겠다고 했다.어쩌다 부모 없이 자라면서도 자신을 잘 지키려고 애를 써온 이 남매를 두고 누가 죄를 물을 수 있다는 말인가?이 남매를 만난 건 4년 전이다. 누나가 자기에게 트라우마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 코칭을 요청했고 동생도 만나게 되었다.공무원 하시는 아버지와 딸 아들 낳고 행복하게 살던 가정
퇴근 무렵이면 남편이 차를 갖고 데리러 온다. 오늘은 망이가 함께 왔다. 요즘 망이가 아무것도 먹지 않아 걱정이다. 병원에 가서 링거를 달고 왔다. 그 힘으로 버티는 듯하다.“망아, 기운이 없나 보네?”가만히 안아주니 실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꼬리를 살짝 흔든다. 이내 고개를 떨어뜨린다. 잠시 후 다리를 뻗대더니 혀를 길게 내밀고 고개를 떨군다. 몸을 떨기 시작한다. 이생의 마지막을 알리려나 보다. 유기견으로 우리 집에 와서 10년을 함께 지냈던 망이다. 나를 만나려고 종일 기다리다 드디어 세상을 떠나는 모양이다.“망아, 이별이구
나는 시인이며 시낭송가이다. 특히 시낭송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시낭송을 먼저 시작한 친구 박홍란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이를 알게 되었다. 판소리와 시조창 등을 익힌 나로서는 시낭송을 가볍게 보는 편이었다. 너무 쉽게 느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30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다.내가 본격적으로 시낭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박재삼 시인 때문이었다.“삼천포에서 제3회 재능시낭송대회를 하기로 했어. 박재삼 시인의 시를 언니가 좀 낭송해 줄래?”시낭송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닌 친구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김수남 소년
남편과 나는 승용차 한 대로 산다. 내가 직장에 다니기에 데려다주고는 자기 볼일을 본다. 오늘은 남편이 볼일이 있어서 내가 기다려줄 차례다. 기다릴 동안 차에서 책을 읽기로 하고 주차를 시도한다.길가의 주차 자리를 겨우 발견하여 차를 뒤로 넣어본다. 몇 분의 아저씨들이 길가 턱에 앉아 다리를 뻗고 있다. 다리가 걸릴까 불안하다.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 모두 나를 쳐다보며 웃는듯하다. 더 조심스럽다. 겨우 주차하고 책을 꺼내 드는데, 아까 그 아저씨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차 앞을 가로막는다. 흠칫 놀라서 차 문을 닫고 유리문까지 닫
“너희들 그거 아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너무 유명해져서 미국까지 알려졌대.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도 만나고 왔다네.”아침부터 아이들이 핸드폰을 들고 웅성거린다. 1교시가 국어 시간이라 이걸 수업 소재로 삼았다.교실에서 가끔 핸드폰으로 수업하는 경우가 있다. 10년 전만해도 낯선 수업이다. 핸드폰에 빠져서 수업 시간에 방해가 되었던 적이 많다. 그래서 담임교사가 모두 거두어서 따로 보관하다가 분실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전원을 끈 채로 각자가 보관하는 걸로 허용이 되어있다. 가끔 수업 중에 벨이 울려 수업 방해가 되기도 한다,
“여러분은 지금 배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는 중입니다. 갑자기 커다란 파도와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배에서 도망을 쳐야합니다. 다행히 구명보트가 있어서 여러분과 소중한 10가지와 함께 피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 10가지를 쪽지에 한 가지씩 적어보세요.”3월 도덕 수업을 시작할 때면 많이 하는 ‘소중함’놀이이다.대부분의 아이들은 휴대폰과 엄마 아빠는 빠지지 않고 적는다. 이어서 돈, 핸드폰, 동생, 먹을 거 등을 적는다. 소중한 것이 10가지 넘어서 더 적게 해달라고 떼를
“선생님, 저 애는 원래 못 말리는 애예요.”“그래? 언제부터?”“유치원 때부터요. 늘 우리를 괴롭히는 아이였어요.”1~3학년 수업을 시작하려니 철수를 가리키며 다른 아이들이 하는 말이다.“그동안 좋은 선생님 만나서 바뀐 부분은 없다는 뜻이니?”갑자기 옆에 앉은 1학년의 아이가 운다. 철수가 쳐다보았다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다며 운다. 유치원 때 과격한 행동으로 자기를 괴롭혔다고 한다. 그래서 싫은데 쳐다보아서 옆에 안기도 싫다고 한다.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한다.새로운 선생님이 아이를 잘 모를까 싶어서 친절하게 일러주는 말들이 기가
“교통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많을까? 안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을까?”1학년 ‘안전한 생활’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물었다.“교통 규칙을 안 지키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이구동성이다.“언제 보았나요?”“우리 아빠는 과속을 잘해요.”“어른들은 교통신호를 잘 무시해요.”TV에서 사고 난 것도 많이 보았다고 한다.“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럼 교통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많으니까 잘 안 지켜도 되겠구나.”“그래도 나는 잘 지켜야 해요.”이어서 아이들이 지켜야 할 교통 규칙을 말해보게 한다.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빨간 불에도 슬쩍 건
“선생님, 글쓰기 계속해요. 체육 시간 포기할게요.”어느 학교 아이들이 글쓰기를 하는 중에 마치는 음악이 울린다. 다음은 체육 시간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수업을 마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하는 것이다“아이들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언가요? 비법을 좀 알려주세요.”그러면서 글쓰기 수업 참관을 하신 선생님마다 무릎을 친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방법이다. 핵심은 아이들의 속엣말을 끄집어내는 거다. 학년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 한다.
“민주야, 개인정보 이용동의서를 냈니?”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으로 다양한 체험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그때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보험을 챙기거나 활동 참여 의사 등을 묻기 위해 개인정보 이용동의서를 학부모로부터 받아야 한다.“이거 꼭 받아놓고 행사를 추진해야 합니다. 소송에 걸리면 꼼짝 말고 당해야 합니다.”학교에서 이걸 받아두어야만 행사 진행 허가를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를 다 받아두기가 아주 힘이 든다. 체험학습을 갈 기회는 많은 데 학부모동의서 받기가 참 힘이 든다.“동의서를 안 내
“야, 눈이다.”방학을 한 주 앞두고 눈이 내렸다.“우리 눈사람 만들자.”등교한 아이들이 운동장 가에서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한다. 눈사람 만들기에는 양이 적은 편이다. 눈을 조그맣게 뭉쳐서 나뭇가지 몇 개를 꽂는다. 귀엽다.“좀 더 큰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한 아이가 탱탱볼을 가지고 온다. 이 볼에다 눈을 붙여 본다. 잘되지 않는다. 억지로 눈을 뭉쳐 그 위에 탱탱볼을 얹는다. 다른 아이들도 좀 더 큰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 눈을 이리저리 굴러보지만 탱탱볼보다는 작다. 손이 시려 호호 불면서 몇 번 굴러보다가 멈추고 교실로
시간이 지나니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담자들은 마음공부법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하면 신뢰를 하지 않는다. 마음공부 외에는 아는 바가 없어 더 공부하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상담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도덕과와 다문화과 석사과정도 상담 관련 논문으로 마쳤고, 교육학 박사과정에서도 상담 코칭 관련 공부를 중심으로 수학하였다. 전문상담교사 자격 과정에서 마음공부법이 최상의 해결책임을 알게 되었다.마음공부를 상담 관련 이론으로 재무장하였다. ‘에니어그램 성향 분석’을 시작해서 ‘사티어 의사소통법’, ‘성
‘교당에 열심히 다니는데 마음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있나?’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일상수행요법 1・2・3조로 시작하는 마음공부가 가볍게 다가왔다. 똑똑하다는 것에 사로잡힌 나에게 경계 알아차리기는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나를 두고 마음공부방에서는 ‘공원 관리인’이라는 별칭을 지어 주었다. 가꿀 줄은 아는데 즐길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기가 찬다. 교당에 안 다니는 분도 경계를 알고 마음일기 발표를 잘하는데 나는 쉽지 않았다. 잘 쓰려고 애쓰다 보니 솔직하지 않다는 거다
철학과에 다니던 대학생이 내 옆자리에 들어와 친구가 되었다. 데모하다가 학비 벌러 들어온 거란다. 공순이의 불쌍한 생활을 알라고 한다. 데모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도 같이 가보았다. 사회의 불평등문제를 알라고 한다. 갈 곳도 없고 당장 먹고 살길이 없는 나는 여기에 끼이고 싶지 않았다. 내게 있어 공장은 돈도 벌고 친구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었다.공장 생활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밤새도록 잠 안 자고 일을 한다지만 옆 친구와 수다를 떨며 마음껏 노래도 불렀다. 퇴근하고 시간 나면 음악다방에 가서 DJ에게 음악 신청도 하면서 수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보름달만 보면 어릴 적 이야기가 떠오른다. 보름밤쯤이면 아이들은 동네 입구 공터에 모여들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서서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달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 모두 눈을 감고 달님께 기도를 시작한다. 달님이 우리의 소원을 꼭 들어줄 거라고 믿는다.‘달님, 언젠가는 나의 진짜 엄마를 보게 해줄 거죠?’밥값 못한다고 쫓겨난 집 담장 아래에서 쪼그리고 앉은 꼬맹이를 다독여주던 달, 공부하지 말라며 마당에 던져지던 가방, 쏟아진 필통 위에 달빛도 쏟아져 내렸다. 둥그런 보름달만 보면 마음이
“점심시간이다. 손 씻고 줄 설까?”모두 손을 씻으러 가는데 철수는 서두르지 않는다. 철수는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자 그제야 손을 씻으러 간다. 아이들은 철수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먼저 출발하자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3월의 5학년 우리 반 점심시간 풍경이다.“어차피 급식소 앞에서 기다릴 건데 왜 그렇게 서둘러야 하나요?”물론 교실에서 같이 출발해도 기다렸다가 배식할 때가 많다. 그래도 거기서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맨 앞에 세워준다고 하면 좋아하며 서두르지만 다른 아이들의 반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