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복싱 시작 정은상 스승 만나 본격 선수생활
출중한 실력 때문에 조폭에게 스카웃 제의 받기도
복싱신인선수권·전국시도대항·도민체육대회 휩쓸어
상록복싱체육관 새단장, 침체된 진주 복싱 재도약

챔피언제조기 진주상록복싱체육관 정대헌 관장 

복서출신 정대헌 관장은 1985년부터 상록복싱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많은 아마추어 선수 및 프로선수를 배출, 지도자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복서출신 정대헌 관장은 1985년부터 상록복싱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많은 아마추어 선수 및 프로선수를 배출, 지도자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1980년대 복싱은 한국의 3대 스포츠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대중적인 스포츠였다. 당시 상록복싱체육관 정대헌 관장은 복서로서 경남아마추어복싱 신인선수권대회 우승, 대통령배 전국시·도대항 준우승, 도민체육대회 우승 등을 이뤄내며 진주 복싱을 이끌었다.

상록복싱체육관 정대헌 관장은 1952년생 만 66세이다. 진주시 금곡에서 태어나 평생을 진주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진주봉래초등학교를 나온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그 운동신경을 철없던 시절 싸움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복싱, 태권도, 유도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그는 그 시절 최고의 스포츠였던 복싱을 선택해 취미생활로 시작했다.

단순한 취미생활로 시작한 복싱이었지만 정 관장은 16살 때 정현상 스승을 만나 급속도로 성장, 당시 스파링파트너가 없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오죽하면 그 실력이 입소문을 타고 뒷골목까지 흘러들어가 조직폭력배로부터 수많은 스카웃 제의를 받았을까.

운동신경, 센스, 정신력 등 복싱을 위해 태어난 정 관장은 진주를 넘어, 경남도, 전국을 휩쓸며 진주 복싱의 저력을 알렸다. 수많은 금메달과 우승을 경험했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따로 있다. 준준결승에서 판정 패배한 제7회 이란 테헤란 아시안게임 1차 선발전이다. 당시 지방 복서 출신으로 인맥이 부족하고, 줄이 없어 유리한 게임을 이끌었지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복서로서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낸 정 관장은 군제대 후 8년간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코치로서 지도자로 시작했다. 지도자 정대헌도 선수시절 못지않은 두각을 나타냈다. 제자들을 4년만에 동양챔피언으로 만들고, 3년만에 한국챔피언을 키워냈다. 1990년엔 최우수 지도자상까지 수상했다.

지도자와 선수가 아무리 훌륭해도 복싱은 대회가 열려야 참가해 성적을 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이 대회가 열리는 곳, 대회를 개최하는 단체에 끌려다녔다. 정대헌 관장은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선수들의 고충을 알고 있었다. 또 지도자가 된 입장에서 자신의 선수, 제자들을 누구보다 아꼈다. 그래서 그는 진주상록프로모션을 만들었다. 내 선수들을 위해, 나아가 복싱이란 스포츠를 위해.

복싱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는 그럴수록 복싱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복싱을 하겠다는 정대헌 관장. 그의 복싱 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진주에서 2016년 개최된 WBA 여자 세계챔피언 결정전에 참가한 상록복싱체육관 소속 최현미 선수 경기 모습.
진주에서 2016년 개최된 WBA 여자 세계챔피언 결정전에 참가한 상록복싱체육관 소속 최현미 선수 경기 모습.

 

-진주상록복싱체육관 관장이다.

△첫 상록복싱체육관은 장대동에서 1985년도 12월 13일에 시작했다. 지금은 제자가 그곳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봉곡동에서 지난 4월 14일에 새로운 상록복싱체육관을 개관했다.

-언제부터 복싱을 시작했나.

△16살에 복싱을 취미생활로 시작했다. 이후 정현상 스승님을 만나 8년동안 가르침을 받으며 스승님 밑에서 복서생활을 했다.

-진주에서 복서생활을 한 것인가.

△진주 금곡에서 태어나 옥봉에서 자란 진주토박이다. 진주에서 계속 생활했고, 복서 역시 진주에서 활동했다.

-복싱을 취미생활로 시작한 이유가 있나.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좋았다. 또 철이 없을 때라 싸움도 많이 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격투기, 운동 등에 관심이 많았고, 그 시절엔 복싱이 최고라 복싱을 선택했다.

-당시 복싱은 최고의 스포츠였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복싱을 잘 모른다.

△지금의 복싱은 비인기 종목이다. 대회 자체가 많지 않고 TV 중계나 협찬사 부재 등으로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복싱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다.

-젊은이들을 위해 복싱이란 스포츠를 설명한다면.

△체중별로 나누어 같은 체급에 속하는 두명의 선수가 글러브를 끼고 정사각형 링 안에서 오로지 주먹만으로 경기규칙에 따라 승부를 내는 스포츠다.

-체급의 종류는.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48kg 미만 라이트플라이급, 48kg 이상 51kg 미만 플라이급, 51kg 이상 54kg 미만 밴텀급, 54kg 이상 57kg 미만 페더급, 57kg 이상 60kg 미만 라이트급, 60kg 이상 63.5kg 미만 라이트웰터급, 63.5kg 이상 67kg 미만 웰터급, 67kg 이상 71kg 미만 라이트미들급, 71kg 이상 75kg 미만 미들급, 75kg 이상 81kg 미만 라이트헤비급, 81kg 이상 91kg 미만 헤비급, 91kg 이상 슈퍼헤비급이다.

-복싱에서 KO란 무엇인가.

△다운이 되어 10초 내 경기를 속행할 수 없을 때, 공이 우리고 10초가 경과해도 경기에 임하지 않을 때, 실력의 차가 현저해 한 선수가 심한 충격을 받았을 때, 경기중 가격당하고 링 밖으로 떨어져 10초 내 자력으로 링 안으로 올라오지 못할 때, 기권할 목적으로 팀에서 수건을 던질 때 등이다.

-다운이란 단순히 넘어지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다운이 넘어진 것으로 생각하는데, 복싱에서 다운이란 상대의 유효타를 맞고 발바닥 이외의 부분이 캔버스(링의 바닥)에 닿는 상태, 전의 상실, 로프에 의지하거나 로프를 끼는 행위, 상대의 공격을 받고 몸이 절반 이상 로프 밖으로 빠지거나 링 밑으로 떨어 졌을 때 등이다.

-선수시절 어떤 체급에서 활동했나.

△밴텀급, 라이트급, 페더급에서 활동했다.

-복싱을 시작할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고 들었다.

△처음 복싱을 할 땐 스파링파트너가 없을 정도였다. 힘이나 스피드 등 복싱선수로서 자신 있었다. 실력이 좋으니 입소문이 나 불량조직에서 스카웃 제의도 많이 들어왔었다.

-성적도 좋았겠다.

△경남아마추어복싱 신인 선수권 대회 우승, 서부경남아마추어복싱 선수권 대회 우승, 대통령배 전국시·도대항 경남대표·준우승, 도민체육대회 우승 등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제7회 이란 테헤란 아시안게임 1차 선발전이다. 준준결승에서 판정 패배한 경기다.

-수많은 경기 중 왜 패배한 경기가 기억에 남나.

△내가 유리한 경기를 이끌며 상대선수를 KO 시킬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후 판정에서 패배했다. 패배 이유는 인맥 부족, 즉 연줄이 없어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경기라 기억에 남는다.

-전성기는 언제였나.

△제3회 대통령배 전국시·도대항 경기가 열릴 때인 것 같다. 밴텀급 경남대표로 참가해 준우승을 이뤄냈다. 결승전까지 모두 KO 승리를 거둬, 그때가 한창 전성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지금은 관장으로 활동한다. 지도자는 언제부터.

△군대를 제대하고 복서로서 몇 차례 경기를 했다. 이후 지도자 생활에 들어갔다.

-군제대 후 선수를 못할 이유가 있었나.

△진주대표로 경기에 참가하며 선수생활을 했지만 나이도 있고 해 코치로 활동을 시작했다. 원래부터 지도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복싱 심판도 했다고 들었다.

△경남아마추어 복싱연맹 공인심판 자격증을 취득하고 심판으로 잠깐 활동했다.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는데, 지도자는 어땠나.

△복서로 활동을 하다 곧 바로 심판, 지도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모든 입장에서 선수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에 제자들을 4년만에 동양챔피언으로 만들고 3년만에 한국챔피언으로 키워냈다.

이외에도 경남복싱연맹에서 지도자상, 진주시 체육지도자상, 한국권투위원회 최우수지도상 등을 수상하며 개인적으로 지도자로도 인정받았다 생각한다.

-아끼는 제자는 누가 있나.

△잘못 말하면 제자들이 서운해 한다.(웃음) 이해해 주리라 믿고 말하면 강병인, 이옥성 선수를 아낀다. 강병인 선수는 전 동양 미들급·슈퍼미들급 챔피언, 이옥성 선수는 제13회 세계선수권대회 플라이급 금메달리스트다.

-이유가 있나.

△내가 복싱을 좋아하니 복싱을 잘하는 선수가 좋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훌륭한 선수지만 이 두선수는 가르칠 때 흡수하는 속도가 빨라 큰 보람을 느꼈다. 인성도 겸비한 훌륭한 선수들이다.

-또 주목해야 할 선수는.

△진주상록체육관 소속 최현미 선수다. 최현미 선수는 WBA 페더급·슈퍼페더급 챔피언에 빛나는 2체급 세계석권 무패 프로복서다. 최 선수는 평양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아마추어권투에 입문했다. 2004년 탈북 후 한국에서 2006년 대통령배전국시도대회 –57㎏과 전국여자신인선수권 –60㎏ 및 2007년 대통령배전국시도대회 –57㎏과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회장배대회 –60㎏에서 잇달아 정상에 올랐다.

-최현미 선수라면. 2016년 진주에서 개최된 WBF 여자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 결정전에 참가한 선수아닌가.

△맞다. 2016년 WBF 여자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 결승전은 진주상록프로모션 주최, (사)한국권투협회 주관, 진주시를 비롯한 많은 기업에서 후원·협찬한 대회다.

-상록프로모션도 운영하나.

△복싱선수들은 대회가 열리는 곳, 대회를 개최하는 단체에 끌려 다닌다. 내가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선수들의 고충을 잘 안다. 그래서 진주상록프로모션을 만들었다.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또 침체된 진주복싱과 한국복싱의 과거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다.

-현재 봉곡동에서 운영하는 상록복싱체육관은 어떤 식으로 운영하나.

△관원들은 주로 오후에 훈련을 하고 있으며 줄넘기로 기본적인 훈련을 하고 새도우 복싱(가상의 상대와 경기하는 방식)을 30여분간 진행, 휴식 후 다시 30여분간 샌드백을 두드린다. 새로운 운동기구를 많이 들여와 복싱을 배우려는 관원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다.

-관훈은 무엇인가.

△‘기본기술은 세계를 제패한다’ 이다.

-앞으로 목표는.

△꾸준히 후배양성에 힘쓰고 복싱의 전성기를 다시 한 번 맞이하는 것이 바람이다.

-마지막 질문으로, 복싱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다시 태어나도 복싱을 하겠나.

△복싱이 좋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복싱을 다시 할 것이다.

조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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