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민들레(5)
야생의 민들레(5)
  • 경남진주신문
  • 승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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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걸었다.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서러움 같은 것이 목구멍에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자기 집 굴뚝에 저녁연기 오르는 것을 좋아하던 섭냄이가 부러웠다. 집에 가면 양친과 형들과 동생이 있고, 아궁이에는 식구들 밥 짓는 불이 지펴지고, 온돌방은 아래윗목 할 것 없이 따끈따끈하고, 김이 오르는 밥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섭냄이의 처지가 부러웠다. 해가 넘어간 후 어둠은 사방으로 급작스레 뒤덮었고 논개의 기분은 스산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나물바구니는 천 근 무게만큼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논개는 울타리도 담도 없는 목수 집 창고 귀통이의 셋방 쪽마루에 나물 소쿠리를 팽기치듯 내려놓고는, 오매가 돌아올 때가 아닌 줄을 알면서도 그냥 방문을 열어 본다. 물론 방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짙게 내린 어둠으로 굴속 같았다. 오매는 일을 끝내고 빨리 돌아와야 초경(初更)이고, 늦으면 이경(二更)이 넘어서 올 때도 많았다. 오매가 일을 나가는 집은 주로 강 진사 댁이었다. 강주섭 노인의 조부 강일후가 진사(進仕)를 지냈을뿐, 지금은 도동 고을 천석꾼 토호로 살고 있지만 마을에서는 그 집을 지사 댁이라 불렀다. 진사 댁에는 부리는 노비들도 있었지만 나이들이 많고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여 간나한 상민(常民)의 여자들이 거의 매일 날일을 다니며 세끼 밥 얻어먹고 품삯으로 곡식 됫박을 받아 오곤 했다.

고을 사람들은 논개의 오매가 점촌댁 혹은 함양댁이라고 불렀다. 오매가 과거에 살았던 지역을 호칭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어선지 논개는 알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가녀린 몸매로 휘청대는 오매가 개천가의 기다란 버드나무 같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서 센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사람이라고 했다. 논개는 오매가 밤마다 심한 기침을 하고 더러는 요강에 혈담(血痰)을 뱉어 내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동네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까지 살던 천변 난전의 주막집 골방에서 논개와 기거하며 주막집 일을 도와주던 오매를, 주인 여자는 논개와 함께 쫓아내다시피 했다. 논개가 울며불며 갈 곳도 없는데 어디로 가라느냐며 주막집 여자의 치마를 붙잡았더니 병쟁이 니 오매 땜에 장돌뱅이와 술꾼들이 주막에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논개는 오매의 병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으나 천변 사람들은 학질이 세어진 것이라고도 하고 노채(현재의 결핵과 유사)라고도 했다. 그 병은 몹쓸 것이어서 고기반찬에 쌀밥으로 잘 먹고 아무 일도 안하고 편하게 지내야 낫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병에 신선병이라 부른다고도 했다. 몸이 쇠약한 사람이 못 먹고 일에 골병이 들면 그런 병이 생긴다고 했다. 잘 목고 편히 쉬어야 한다지만 논개의 오매는 전혀 그럴 팔자가 못 되었다. 딸자식과의 끼니를 때우기 위해 온종일 구정물 속에 손을 넣어 그릇을 씻고 술밥을 찌고 술상을 차리고 그것을 손님 앞으로 날라야 했다. 천변 사람들도 오갈 데 없는 그들 모녀가 불쌍하다고 동정은 하면서도 방을 내주거나 일을 시키려 들지 않았다.

논개가 일고 살이던 여름, 그들 모녀는 천변 난전의 주막에서 끝내 내쫒겨서 이곳 진주목 변방의 고을로 옮겨 오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오매가 병이 든 것을 동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모녀는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오매는 일 도중에 간간이 밭을기침을 하는 모양이었고, 며칠 전에는 쓰러지기까지 했다니 소문은 어차피 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기침을 하거나 쓰러지지 않았더라도 오매의 푸른 기가 도는 창백한 얼굴과 피골이 상접한 휘청거리는 몸매가 도리 없이 병든 여자임을 알게 했을 것이지만, 논개는 사람들이 모르기를 바랐다. 논개는 가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불안감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고을에서는 정말로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의 인심이 따뜻했고 선학산과 너른 들판이 기막히게 좋았던 것이다. 이고을 은 논개가 네댓 해 동안 흠뻑 정이 든 곳이었다. 널따란 들판에 나서면 가슴이 탁 트였고, 먹을 것이 많았고, 무엇인지도 모를 의욕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오로지 오매만 병이 더 깊어지지 말고 이곳에서 오래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섭냄이나 막딸이, 순검이처럼 아버지나 형제가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었으므로 유별한 그리움도 없었다. 다만 그녀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으므로, 그때 당신도 논개도 함께 아버지를 따라 죽었어야 했다는, 오매의 푸념만 귀가 아프게 들었을 뿐이었다. 논개는 오매의 그런 넋두리를 들을 때마다 비탄에 잠겨 드는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어이없어했다. 남편 없고 재산도 없어 찌들어지게 고생하는 오매의 고단함은 알지만 그러나 뭣 땜에 산 사람이 아버지를 따라 죽어야 하느냐고 되받곤 했다. 그러면 오매는 이기 사는 기가, 지옥이제•••.” 했었고, 논개는 세상에 태어났으모 살아야제 와 등신맨키로 그냥 따라 죽어? 나는 싫다.” 하고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럴 때마다 오매는 논개를 향해 본데없이 들망아지맨키로 천방지축 지멋대로 크는 저 가시나를, 우찌할꼬? 어이구 불쌍한 것•••.” 하면서 훌적거렸다.

우쨋거나, 나는 이 세상에 오매만 있으모 된께 내가 걱정되거덩 오매는 얼릉 병이나 나아라.”

논개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관솔 조각을 찾아 불을 정짓간 부뚜막의 옹기그릇 나에 세운다. 방 안 구석의 항아리에 찧어 놓은 보릿살 이 두세 끼는 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들어 있었다. 곡기라곤 아침녘에 보리쌀 한 줌 넣어 끓인 시래기죽 한 사발을 먹는 것밖에 없었지만, 행여 오매가 주먹밥 한 덩어를 얻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캐 온 나물이나 데쳐 먹을 생각을 한다. 나물을 삶아 먹자면 우선 솥 바닥 터진 곳을 밀가루 반죽으로 막아 메워야 했다. 무쇠솥을 하도 오래 사용해서 닳아빠진 솥 바닥 한쪽에 콩알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것을 밀가루 반죽으로 막지 않으면 아무것도 솥에 넣어 끓일 수가 없기 때문이엇다. 땜질을 한 반죽이 불에 타서 죽이나 밥에 누린내 같은 불내가 났지만 그러나 소의 물이 아궁이로 흘러내리지 않았다.

논개는 솥 바닥 구멍을 메운 후 물을 붓고 불을 지폈다. 그리고 나물 바구니를 관솔불 밑으로 끌어당겨 쑥만 대충 골라냈다. 이어 바구니를 안집 우물가로 들고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려 나물을 두서너번 헹구어 냈다. 그리고 솥의 끓는 물에 배추 뿌리와 함께 나물을 쏟아 넣어 데쳐 낸다. 삶아진 나물을 다시 찬물에 건져 내어 작은 손바닥으로 꼭꼭 눌러 짜선 간장과 된장을 조금 넣어 바락바락 주물러 무친다. 나물의 향을 죽이지 않기 위해 된장을 아주 조금 넣었다. 배추 뿌리도 적당히 삶겨 먹기가 좋았다. 삶는 것으로 매운맛이 적어지고 단맛이 많아져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니었다. 논개는 아궁이 앞에 퍼질러 앉은 채 양념이 묻은 그 손으로 나물을 한 움큼씩 입 안으로 넣어 우적우적 씹었다. 밤나물, 나싱개, 덮개나물, 달래, 돌미나리가 한데 어우러져 기막힌 향기로 목줄을 끌어당겼다. 다른 한 손으로 삶은 배추 뿌리를 들고 번갈아 입 안으로 쓸어 넣어 볼이 미어터지도록 먹어 댄다. 목이 막혀 물도 한 바가지 떠 마셨다. 아궁이 앞에 나물 무친 투가리를 가운데로 놓고 두 다리를 벌려 앉은 채 나물이나마 실컷 먹을 수 있어 그녀는 행복했다. 먹을 때는 이 세상 아무것도 부럽지가 않았다. 무거운 쇳덩어리처럼 언제나 가슴 바닥에 박혀 있는 오매의 지병도 먹는 순간에는 잊었다. 나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배가 불러 왔다. 고기를 씹은 후처럼 이와 잇몸도 뻐근했다.

고만 묵자. 낼 아츰에 안 나오는 풀똥 땜에 또 힘들 낀데•••.”

나물로만 배를 채우거나 송기나 솔잎가루로 만든 범벅을 먹거나 하면 쾌변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새까만 변이 동글동글 딴딴하게 뭉쳐져 항문을 잘 빠져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부석(부궁이) 앞에서 머 하노?”

어느새 오매가 돌아와 정짓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옴마 왔나! 일찍 왔네.”

논개가 자배기를 들고 일어나며 반가움에 소리를 높인다.

저녁 묵었나?”

나물 삶아 묵었다.”

또 들에 나갔더나? 수를 놓든지, 점백이 할매한테 가서 길쌈하는 거나 배우라 쿤께.”

옴마, 나는 그런 거 답답해서 몬 하겄더라. 고까짓 거는 배울 끼라 작정하모 금방 배운께네 그런 거는 걱정 말고 옴마 몸이나 걱정해라. 강 진사 집에서 시기 딲다가 씨러졌다매?”

 

6편에 계속

 

/김지연(소설가)

 

작가약력

진주 출생, 진주여고/중앙대학교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1967매일신문신춘문예 소설 당선, 역사소설 논개 1.2.330여권, 채만식문학상(3), 경남일보 문화부 차장, )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서울은평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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