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는 음성에 힘을 주어 못을 박듯 섭냄이에게 말하고는, 돌아서 산을 뛰어내리기 시작한다.“같이 몬 살아도, 내가 맨날 산에 올게.” “맨날 오모, 그것이 같이 사는 거랑 똑같제 뭐꼬? 우짜다 한 번씩만 오이라. 참 그리고 너 옥개 엉가, 혼삿날 잡았나?” “응, 잡았다. 초파일 지나서 초아흐렛날 한다 쿠더라! 보름쯤 남았다.” “너 아재형부 될 그 총각이, 요새 너거 집에 왔었나?” “안 왔다. 혼사도 안 올맀는데, 각시 집에 머하러
“할매, 지 극정 마시소. 지는 올매든지 혼자 살아갈 수 있습니더. 그라고, 오매 이불은 안 태울랍니더. 이불이 한 채 뿐이라서 지가 겨울에 덮을라꼬예.”“그라던가. 그래도 안 좋은 병을 앓던 사람이 덮던 이불인께, 햇빛에 메칠 널어서 잘 말리야 할 끼다.”할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노비 말마따나, 있는 집에서 니를 수양딸로 삼아 가모 올매나 좋겄나마는….”“지는 진짜로 혼자 살아갈 끼라예. 지는 썽질이 못되서 그란지 시집가서 조부모 씨부모
“영감마님이 논개를 몸종으로 탐낸다 캤나? 종놈 종자가 아닌데, 종이 되모 안 되제.”“논개가 당신 딸이오? 종이 되든가 말든가 우리하고 무신 상관이요.지 년이 복이 있어서 누가 수양딸 삼아 가모 가매 타는 기고, 아니모 종년이나 기생 되는 거밖에 더 있겄소. 일가친척은 씨알맹이도 읎는거 같고.““목소리 좀 낮차라. 쟈들 듣겄다.”“들으모 우떻소?”물론 논개는 안채로 들어가며 큰 소리로 뱉어 대는 창기 오매의 말을 다 들었다.그런데, 때맞추어 섭냄
논개는 발걸음이 얼른 떨어지지 않았으나 거기서 더 머뭇거리면 어른들한테 걱정만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저께 아침까지 살아 있던 오매를 차가운 땅속 깊숙이에 꽁꽁 묻어 놓고, 혼자산속에 버려두고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 차마 못할 짓 같았으나, 일단은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또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한 번 돌아보았다. 할매가 그런 논개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양 “갠찮다. 깊숙이 잘 묻어 놨잉께 짐승이 파내지도 않고 바람이 불어도 춥지도 않을 끼고 비가 와도 젖지 않을 끼다. 얼렁 내리가자.” 하며
창기 오매는 그 말을 끝으로 획 몸을 돌려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점백이 할매가 고개를 휘휘 내둘렀다.“세상에, 어른이라 캄서 저 말하는 거 좀 보래. 참말로 더럽고 야박스런 인씸이네. 그래, 논개 내가 데려갈 텐께 극정들 말어, 쯔쯔.”점백이 할매는 창기 오매가 들어간 안채 쪽을 향해 혀를 끌끌 찼다.목수인 창기 아버지는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편한 얼굴은 아니었다. 훈장 어른이 죽은 오매를 어디에다 묻을 것인지 걱정하자 창기 아버지가 뒷뻔덕 야산밖에 더 있게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ldq
오전 녘에 긁어모아 둔 잡나무 낙엽들을 다져 뭉치를 만들던 논개는 전신으로 찌르르 흐르는 어떤 서늘한 느낌에 굳어져 서 버린다. 알 수 없는 찬 기운이 전신을 훑었던 것이다. 뺨의 솜털이며 머리끝, 팔뚝, 다리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온몸이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불각시리, 벨 희안도리납작한 일도 다 있네! 몸띠가 얼음물 뒤집어 쓴 것맨키로, 갑자기 와 이라제? 내가 몸살 할 낀갑다. 깔비는 낼 와서 더 긁고 오늘은 해 놓은 거나 뭉쳐서 고만 가야겄다. 얼렁 가서 오매 죽 뎁히 조야제.”논개는 가마니 조
오매가 만류를 했다.“갠찮다. 내가 나무를 긁어서 모아 둔 기 있는 기라. 퍼뜩 가서 이고 올 텐께 약 다 마시고 누워 있어라. 갔다 와서 죽 뎁히 줄게.”논개는 노비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둘러 낫과 새끼줄을 챙겨 산으로 향했다. 잠깐이겠지만 오매 옆에 노비가 있어 주니 아무도 없는 것보다 마음이 든든했다. 밖으로 나가는 논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비는 거듭 논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시상에, 야무지고 효녀로세! 저 어린 나이에 배미를 잡아서 부모 약고옴까지 만들고
초전 고을로 가는 길목에 야트막한 음산(陰山)이 있고 그 산의 오솔길에 뱀이 유난히 많이 기어 나왔다. 사람들은 그 산 밑의 못에 물을 먹기 위해 뱀들이 기어 나온다고도 하고 햇살이 따스해서 몸을 덥히러 나온다고도 했다. 이유야 어떻든 겨울잠 속에서 깨어나 길바닥으로 기어 나오는 뱀들은 잽싸지 못하고 비실거렸고, 아이들은 돌을 집어 그 뱀을 겨냥하여 죽이곤 했다. 논개도 재작년과 작년에 연이어 이맘때에 그곳에서 뱀을 여러 마리 때려죽인 적이 있었다. 꼴망태에 죽인 뱀을 담아 가서 푹 삶아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뱀을 먹으면 부정을
이날도 논개의 관심은 개에게만 있었다. 햇살이 하늘 꼭대기에 솟구친 정오쯤이었다. 동추마당 귀퉁이에서 점백이 할매네의 다섯 살짜리 손자가 노란 똥을 쌌다. 그러자 어디서부터인지 누렁이 두 마리가 달려왔다. 점백이 할매는 다가온 개들을 소리를 쳐서 쫓았다.“저리 가라. 니놈들 묵을 꺼 아이다. 우리 껌둥이 먹을 끼다. 껌둥아, 워리, 워리, 껌둥아, 이리 오사 똥 무라.”점백이 할매는 얼굴을 돌려 검둥이를 소리쳐 부르면서 동시에 마당 가장자리의 풀잎을 뜯어 손자의 항문을 닦아 준다. 누렁이들은 달아나지 않고 김이
논개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걸었다.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서러움 같은 것이 목구멍에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자기 집 굴뚝에 저녁연기 오르는 것을 좋아하던 섭냄이가 부러웠다. 집에 가면 양친과 형들과 동생이 있고, 아궁이에는 식구들 밥 짓는 불이 지펴지고, 온돌방은 아래윗목 할 것 없이 따끈따끈하고, 김이 오르는 밥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섭냄이의 처지가 부러웠다. 해가 넘어간 후 어둠은 사방으로 급작스레 뒤덮었고 논개의 기분은 스산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나물바구니는 천 근 무게만큼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논개는 울타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