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건강 이정표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원 객원교수
前 광주대학교 대체의학과 교수
월간 인산의학 발행인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나무 위로 힘들게 올라가는 사람에게 ‘거기 왜 올라 가십니까?’라고 물으니 ‘잉어 잡으러 갑니다’라고 말했다.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 형국이다. 이처럼 뒤집힌 생각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건강해지겠다고 하면서 엉뚱한 곳에서 길을 찾고 있다. 병은 원인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인 없이 악화되지도 않는다.

여러분이 제 얘기를 듣고 세상의 의학과 비교 분석을 잘 해보면 인산 김일훈 선생이 제시하신 인산의학이 몇 천 년 내려온 의학이론을 뒤집는 창조적인 의학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식이 아닌 지혜

제 얘기가 세상 사람들의 상식이나 과학지식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떠서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데 이것이 마치 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는 움직이지 않는다.

태양계의 중심에 있고 그 주위를 달과 별이 돈다. 그런데 지구에서 보면 해가 움직이는 것 같다. 병 치유에 있어서도 이처럼 착각하기 쉬운 것들이 있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면 해열제를 써서 열을 내린다.

열은 감기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서 우리 몸이 알아서 발열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약으로 열을 내려 감기를 치료하려 한다. 그리고 감기에 걸리면 항생제를 쓴다. 장내세균은 몸의 면역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항생제를 쓰면 장내세균이 초토화되고 몸속 세균의 균형이 무너져 병을 악화시킨다. 우리나라는 십 수 년째 OECD 국가 중 항생제 사용 1위다. ‘나는 항생제 안 먹으니 괜찮겠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축을 사육하거나 어류를 양식할 때 항생제를 쓴다.

식품으로도 항생제를 섭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문제의식을 가지려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깨어 있는 분들이다. ‘내 건강관리에 이런 것이 문제였구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술과 가르침이 훌륭하다는 인산 선생께서 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 했나’ 알기 위해 이렇게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걸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치려고도 하지 않으니 문제다. 하나님께서 머리를 액세서리로 몸에 붙여주신 게 아니다. 생각을 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올바로 인식해 주어진 자연수명대로 120세 천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누리다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들은 지식(知識)과 지혜(智慧)를 구분하지 못한다.

인산 선생은 지식이 승화되어서 지혜로 완성이 된 대표적인 분이다. 그는 어떤 현상을 보면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파악한다. 환자가 들어오면 냄새를 맡고 얼굴색과 눈빛, 걸음걸이 등을 보고 병을 안다. 지혜로우면 안목(眼目)이 생기고, 안목이 생기면 실상(實相)를 보게 된다.

지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혜다. 세상 지식으로 해결이 안 된다.

기름이 불을 붙이는 원료이긴 하지만 기름이 세상을 밝히고 방을 따뜻하게 하지 못한다. 불을 붙여야 한다. 어둠을 밝히는 것은 불이다. 지혜지 지식이 아니다. 지식은 기름일 뿐이다. 지식이 지혜로 승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밥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지 몰라도 병은 해결하지 못한다.

​면역력은 화타나 편작보다 뛰어난 의사

우리는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본다. 이 안경을 벗지 않으면 진실을 볼 수 없다. 진실을 보려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버려야 한다. ‘깨닫다’는 말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을 의미한다. 단단한 벽을 깨뜨리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진실을 볼 수 없다. 그럼 언제 볼 수 있는가? 요단강을 건널 때에야 본다. 살아서는 볼 수 없다. 요단강을 건너가야 건너편에 있는 진실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할 때 있었던 일이다. 제갈량의 공격을 받은 조예는 명장인 사마의를 보내 대적하도록 했다. 제갈량은 명성과 능력이 출중한 사마의에 대항할 장수를 두고 고민하다 친구이자 참모인 마량의 아우 마속을 내보낸다. 그가 사마의를 막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마속은 공부도 잘하고 병법도 많이 아는 똑똑한 장수였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했다. 그러나 마속은 공을 세울 욕심에 패전하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제갈량은 신중하게 처신할 것을 당부하며 전략을 내리지만 마속은 명령을 어기고 다른 전략을 세웠다가 대패하고 만다. 엄격한 군율을 전군에 알려야 했기에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으며 마속의 목을 베었다. 이것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다.

​이 사자성어를 질병에 대입시켜 보자. 이론과 기술만 가지고 병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병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할 수 있는 중대한 침입자다. 이 중요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아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럴만한 수준도 안 되면서 자신의 지식만으로 병과 싸워 이기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창조주가 우리 몸을 설계한 그대로 병 치유에 적용하면 100% 고칠 수 있다. 내 몸 안의 의사인 면역력은 화타나 편작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병 고치는 데는 귀신이다. 내 몸의 자연치유 능력을 믿고 그가 치유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맹꽁이 황제’가 자기 몸속 천하 명의를 두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한다. 외국에서 약 갖다 먹고, 주사 갖다 맞고, 항생제 먹으면서 명의의 손발을 묶는 것이다. 아마도 내 몸의 명의들은 “황제께서 외국 용병들을 불러다 전쟁을 치르신다고 우리보고 꼼짝 말라고 하니 전쟁에 패해도 우리 책임은 없습니다”라고 하지 않겠나. 명의들을 가둬놓고 전쟁하니 백전백패 아니겠나. 황제가 패전의 이유를 물으면 용병들은 “적이 너무 강해서 절대 이길 수 없었습니다”라고 할 게다. 적이 강한 게 아니라 명의인 면역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패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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