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향만리 5)
녹동 김기원
남강문학협회장
한국토산차연구원장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예로부터 강릉 동쪽은 동해 바다, 서쪽은 평창(平昌), 횡성(橫城). 남쪽은 삼척(三陟), 북쪽은 양양(襄陽), 본래는 예국(濊國), 고구려는 하슬라(何瑟羅). 신라 경덕왕 때 명주(溟州), 고려 충렬왕 때 강릉이라 하였다.

아름다운 산수(山水)에 푸른 바다, 천 겹의 오대산(五臺山), 대관령(大關嶺)과 보현산(普賢山)에 원읍고개(員泣峴), 모로고개(毛老峴), 독고개(禿峴), 화비고개(火飛峴) 삽고개(鈒峴)가 있고, 월정산(月正山) 소은백이산(所隱柏伊山) 화부산(花浮山) 소우음산(所亏音山)이 솟았다.

신라 화랑들이 모여 차를 즐겼던 동해안에 차 문화 유적지로 유일하게 남아 문헌에 전하는데 단국시대부터 물과 땅의 만남 자리로 생명 탄생 기원설에 의거 동해안에 대표적인 향목(香木) 매립지로 알려진 곳이고 차 문화 유적지의 기록은 『동국여지승람』에 한송정을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했고 소나무가 울창하고 정자 곁에 차샘(茶泉), 돌아궁이(石竈), 돌절구(石臼)가 있는데 술랑선인(述郞仙人)들이 놀던 곳이다’라고 기록과 일명 녹두정(綠豆亭)이라고도 불렀다.

한송정 건립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전혀 없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 때 화랑들이 한송정을 방문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그 이후 여러 역사적 인물들이 한송정을 방문한 기록이 전한다. 고려의 문인 안축(安軸; 1287-1348)이 쓴 제한숭정(題寒松亭 ; 한송정을 적는다) 시가 있어 원문과 해설을 소개한다.

四仙曾會此 客似孟甞門 ; 사선을 일찍이 이곳에서 만났으니 손님이 맹산군의 문 앞 갈았으리.

(사선증회이 객사맹물문)

珠覆雲無迹 倉官火不存 ; 구슬신발은 구름처럼 자취가 없고 소나무는 불타 남은 것이 없네.

(주복운무적 창관화불존)

尋眞思翠密 懷古立黃昏 ; 선경을 찾자니 푸른 밀립이 그립고 예날을 희상하며 황혼을 심노라.

(심진사취밀 희고립황혼)

唯有煎茶井 依然在石根 ; 아직 차 달이였던 우물만 남아, 예전처럼 돌 뿌리에 있네.

(유유전다정 의연재석근)

한편 강릉부사 윤종의(尹宗儀)가 ‘신라선인영랑연단석구(新羅仙人永郞鍊丹石臼)’라고 새겨놓은 석조물이 남아 있다고 하였으나 금석문에 별다른 기록물은 없었지만 맑은 물이 솟고 있는 돌샘이 있다.

고려 말~조선 초에 인물로 추정되는 기생 홍장(紅粧)이 강릉 한송정의 감회로 지은 시조가 유일하게『교주해동가요(校注海東歌謠)』에 수록된 내용을 현대어로 소개한다.

한송정 달 밝은 밤에 / 경포대의 물결은 잔잔한데 /정다운 갈매기는 / 오락가락하고 있건마는 어찌된 것인가/ 우리 왕손(王孫)은 /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그런데 서거정이 편찬한 『동인시화(東人詩話)』에 기생 홍장과 박신(朴信; 고려말 조선초) 관련 일화가 수록되어 전하며 신사임당 기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寒松亭畔孤輪月(한송정반고윤월) 鏡浦臺前一陣風(경포대전일진풍) 沙上白鷗恒聚散(사상백구항취산)...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

한송정은 동해안에 신라 화랑들이 차를 달여 마시고 수련하였던 차 문화 발상 유적지이므로 강릉 시는 한송정 일대를 정비하였고 정자 및 돌샘을 복원하여 대내외에 널리 알려 강릉시민이 자긍심을 갖는 차 문화 행사와 한국 차 문화 계승 및 다도예절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매년 강릉동포다도회 주관, 오죽헌/시립박물관 주최, 공군 제18전투비행단 후원으로 한송정 헌 다례와 들 차회가 민·관·군 공동으로 개최하는데 16회를 넘었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