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병항

분복(分福)의 한계

하늘(조물주)이 모든 생명체들에게 부여해준 복의 분량이 사람마다 전생업연에

따라 다르다. 분복을 복분(福分), 복량(福量), 분수(分數)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전생의 업연에 따라 혹자는 부가에서 태어나고 혹자는 빈가에서 태어나게 된다. 극빈자도 있고 열석지기도 있고 백석지기도 있으며 천석지기도 있고 만석지기도 있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재물이 쌓이는 자가 있는가하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여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자들도 있다. 이것이 곧 분복의 한계이다.

분복은 전생의 업연에 따라 주어지는 것임으로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형제자매라도 각자의 분복이 다르다. 그래서 금생을 복 받게 살아야 내생에 복을 누리게 된다.

복량의 한계가 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만약 복량이 부족하면 복기를 키우면 된다. 복 그릇을 키운다는 것은 정직하고 성실한 노력과 남에게 베푸는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씨앗은 뿌려야 싹이 나기 마련이듯이, 남에게 베풀면 직접이든 간접이든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그 대가가 돌아오기 마련인 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천리이다.

복기(福器) 키우는 인생

필자가 한때 단골로 다니던 대포술집에서 한 젊은이의 처신을 눈여겨볼 수 있었다. 그는 건설현장 선배 노동자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는 중인 것 같았다. 그는 반드시 담배 갑을 탁자에 내놓고 아무나 피우게 하였다. 그리고 술값 계산도 거의 매번 솔선해서 자신이 내곤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 청년 앞으로 복을 받겠구나 싶었다.

반년 쯤 지나서 보니까, 그가 하청업자로 변신해 있었고 거꾸로 연상선배들은 그의 하청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로 바뀌어 있었다. 그 젊은이는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복 그릇을 키우고 있었다. 이와 같이 무의식중에 복 그릇을 키운 사람들이 초년에는 고생해도 중 말년에는 잘 살게 된다.

전형적 빈자(貧者) 인생

세상에는 앞에서 소개한 젊은이와는 정반대로 가난을 자초하는 삶을 사는 자들도 많다. 필자가 50대 초반에 만난 한 중년 남성은 황해도에서 월남한 서북청년단 간부 출신으로서 왜정 때 중학교를 나와 월남전에는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매우 유식하고 언변도 좋은 언제나 말쑥하게 차려입은 표본적 유한자였다.

당시만 해도 담배를 권하는 것이 일상적 인사치례였고 교제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리고 인심의 척도이기도 했다. 그는 남이 권하는 담배는 사양치 않고 곧잘 받아 피우면서도 자기의 담배는 남에게 권하는 법이 없었다. 물론 같이 피우도록 탁자에 내놓는 법도 없었다. 언제나 신사복 조끼 윗주머니에서 한 개비만을 뽑아서 혼자만 피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야말로 인색한 빈자가 되는 표본적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는 인왕산 꼭대기 판자촌에서 단간 셋방에서 부인과 단 둘이 살고 있었다. 그것도 맨 뒤 구석진 골방에서, 부인이 청과시장에서 채소를 팔아 근근 부지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말쑥한 신사복 차림으로 빈둥빈둥 놀러만 다니는 백수였다. 그야말로 빈자가 되는 전형적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이런 사례를 예로 드는 것은 자기를 비하하거나 매도하려함은 물론 아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병든 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서다.

우매(愚昧)한 유산

가급적이면 많은 유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애지중지한 자녀들이 남들처럼 힘든 노력을 하지 않고도 호의호식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나머지, 자녀들 스스로 노력해야 할 몫까지도 다 부모가 해 주려고 재산을 쌓는다면 그것이 과연 자녀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유산이겠는가!

동물들은 자식들이 튼튼하게 자라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줄 뿐, 자식들이 가만히 놀아도 굶어죽지 않고 살아가도록 먹이를 쌓아두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사람도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건강한 인간으로 자라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갖추도록 해주면 될 것이다. 그러지 아니하고 태산같이 재산을 쌓아 놓는다면 그 자식들은 일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물려받은 재물로 호의호식하며 즐겁게 살아갈 궁리만 하지 않겠는가. 그 궁리가 과연 무슨 궁리이겠는가.

속담에 “3대 부자 없고 3대 거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세불 백년(勢不百年)이라 했다. 대체로 권세는 10년 이상을 못 넘기고 아무리 많은 재산을 쌓아도 100년(3대) 이상은 부를 누리지 못한다는 진리의 말이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10대에 걸쳐서 만석꾼으로 살아간 경주 최 부자처럼 덕을 많이 쌓은 자의 경우이다.

과거의 부자들은 가난이 뼈에 사무쳐서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해서 2세를 교육시켜 직장을 갖게 하거나 밑천을 대 줘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뒷바라지를 해 주면, 그 2세도 부모를 본받아서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함으로써 상당한 자산가가 된다. 다음 대인 3세 역시 조부모와 부모의 근면성과 절약함을 본받아 노력함으로써 출세를 하거나 더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된다. 이것이 부자가 되는 순리이다.

거지가 되는 순리는 정 반대이다. 2세는 부자인 1세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편히 살 수 있어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어서 쓸 궁리만 하게 마련이다. 이런 부모를 본받은 3세도 노력은 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거나 쓰는 데에만 열중하게 됨으로써 남은 재산을 탕진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거지가 되는 과정이다.

덕망 있는 적선가는 누대를 넉넉하게 지내는 경우도 전혀 없지 않으나 대개는 이와 같은 흥망성쇠의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창고 안에 곡식을 잔뜩 쌓아두면 밑에서부터 썩기 마련이고, 독 안에 가득 채어둔 엽전은 오래가면 시퍼렇게 녹이 쓸기 마련이다. 이것이 재산가의 자식들이 정신적으로 병들게 되는 이치이다. 많은 유산을 남겨두면 자손들이 오순도순 잘 살 것 같지만 유산 때문에 형제간의 정의가 끊기고, 심지어는 사생결단의 비극을 낳기도 한다. 그러니 필요이상의 유산은 자식들을 병들게 하는 우매한 유산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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