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한영탁

서울대 신문대학원 졸
조선일보 기자, 세계일보 편집부국장
한양대 교수 역임
수필 등단

지난 1992년 2월 18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총리회담을 취재하러 가는 길이었다. 개성에서 동(東)평양 행 철도 연변의 겨울 산야는 너무 황량했다. 산꼭대기까지 나무 한 그루 없이 벗겨진 민둥산, 초라한 역사(驛舍), 점판암을 구들장 같이 잘라 만든 청 슬레이트라는 것으로 지붕을 인, 6·25전쟁 직후의 군대막사 같은 집단가옥들이 띄엄띄엄 널려 있는 농촌은 생명이 멈추어 있는 풍경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이른바 김일성의 주체농법으로 다락 밭을 일군다고 산의 나무들을 죄다 베어내고 산을 모두 벌거숭이산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높고 낮은 산 가릴 것 없이 그렇게 모조리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차창으로 흘러가는 민둥산들을 보고 있자니 김동인의 단편소설 『붉은 산』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만주(滿洲)에서 중국인 지주의 땅을 가는 우리 소작농들이 모여 사는 빈촌. 「삵」이라는 별명의 싸움꾼이자 투전꾼인 사나이가 마을로 흘러들어와 무위도식한다. 마을 사람들은 기생충 같은 존재인 그를 싫어하지만 뒷 행패가 겁이나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소작료를 바치러 간 송첨지가 소출이 좋지 않다는 구실로 중국사람 지주한테 매를 맞아 죽은 날, 마을 사람들은 분개한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그런데 지주를 찾아가서 송첨지의 죽음에 복수를 한 「삵」이 중국인들한테 뭇매를 맞고 이튿날 아침 동구 밖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고 있다. 「삵」은 이 소설의 1인칭 화자(話者)로 역학(疫學) 조사차 만주를 여행 중인 동포 의사의 팔에 안겨, “보구 싶어요.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하고 중얼거리며 숨을 거둔다.

나라와 삶의 터전을 잃고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로 전전 유랑하다가 개망나니 신세로 전락한 사나이. 그가 죽음을 앞두고 그리워한 붉은 산은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유린되어 황폐화 된 조국을 상징했다. 흰 옷은 순박하지만 힘없는 우리 부모형제, 겨레의 상징이었다. 죽어가는 사나이가 그리워하는 조국이 헐벗은 붉은 산으로 표상(表象)되는 쓰라린 현실이 가슴 아팠다.

나라가 체제를 달리하는 남북으로 분단된 지 75년이 된다. 그 남쪽에서는 이제 벌거숭이 붉은 산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어딜 가도 산에 울창한 수목과 수풀이 우거져 있다. 광복 이후 이승만 대통령 정부 때부터 박정희 대통령 정부로 이어지면서 비록 더디긴 했지만 끊임없이 추진해온 조림(造林) 운동과 사방(砂防)공사가 가져온 결실이 전 국토의 산을 푸른 산으로 가꾸어 준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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