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멸망 이후 2백 여 년이나 ‘발해인’이라 불린 사람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은 최근 연구총서 <새롭게 본 발해 유민사>를 펴냈다. 이 책은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 되어 건국된 발해국의 멸망과 그 이후 200 여 년 동안이나 부흥운동을 전개한 불굴의 사람들, 발해 유민에 대한 기록을 새롭게 검토한 것이다.

‘해동성국’으로 불리며 발전했던 발해는 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거란(요)의 공격을 받아 하루아침에 멸망한 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발해 마지막 왕 대인선은 926년 1월 수도인 홀한성(忽汗城)이 포위되자 흰 옷에 새끼줄로 양을 끌고 신하 3백 여 명과 성을 나와 거란 태조 앞에 항복하고, 거란 수도로 끌려갔다. 거란 태조는 대인선에게 오로고(烏魯古), 처에게는 아리지(阿裡只)라는 이름을 하사했는데, 이는 태조와 그 왕후가 대인선의 항복을 받을 때 탔던 말의 이름이었다.

나라가 망한 후 발해 주민은 거란으로 끌려오거나 고려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며 망국민으로서의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발해인’들의 부흥 운동은 2백년 이상이나 이어졌다. 이 책은 발해 유민의 역사를 6개의 주제로 나누어 관련 분야 전문가 “발해 유민 연구 동향” (김은국) “동단국(東丹國)의 운영과 발해 유민” (임상선) “고려시대 ‘발해 유민’과 ‘발해계(渤海系) 고려인’ 연구 (허인욱) “요대(遼代) 발해인의 성격과 존재 양태 (나영남) “금대(金代) 발해인들의 세거양상과 현달한 발해인들의 역할”(박순우) “발해 유민의 불교와 사원” (황인규) 가 알기 쉽게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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