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형택
전 진주시총무국장
전 진주시의회의원
전 진주문화원 부원장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너와 나가 어울려 살아간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여 살게 되면 저절로 풍속 습관이 생겨나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윤리 도덕이 이룩되는 것이다. 윤리 도덕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共同體)에 있어서 질서를 바로 잡아주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 갈 수 있도록 마음과 몸을 가다듬어 주며 삶의 모습을 가꾸어 준다.

사람이 이러한 가장 큰 공동체는 지구촌(地球村)이라 일컫기도 하는 이 세계(世界)이고, 그다

음은 나라(國家)며 가장 작은 단위는 가정이다. 지구촌인 세계에 국제질서가 있고 인류공동의 도덕률(道德律)이 있듯이 나라에도 헌법이 있고, 몇 가지 법률이 있다. 마찬가지다. 범절이 있고 법도가 있고 규범이 있다. 이를 가법(家法) 또는 가도(家道)라 하며 가법, 가도에서 우러난 특유의 분위기나 생활양식, 도덕률은 가풍(家風)이라 한다. 인류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이룩되는 가풍은 곧 구성원인 가족에게 평생을 두고 영향을 준다. 인간은 가족으로서 가풍을 만들기도 하지만 일생동안 가풍에 젖어 가풍을 지켜가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조상을 뿌리로 해서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상이 계셨기에 오늘 내가 이렇게 존재하게 된 것이다.

가정 또한 그렇다. 먼 조상에서 내려오는 전통이 있고, 그 전통에 의해 가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가도가 모여 사회 국가의 독특한 기풍이 조성되며 특유의 민족성(民族性)이 이룩된다. 우리 민족 고유의 가도를 오늘날에 되새기는 동시에 현대 생활에 알맞은 참신하고도 올바른 가도(家道)를 세워 스스로 가정의 역사를 이룩해 간다는 자부심으로 의연하게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옛말에 “성실한 것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실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道)라는 말이 있다. 성실한 것으로 치면 우주(宇宙)의 운행을 따를 것이 없다. 해와 달이 갈마들면서 뜨고 지는 것이라든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김없이 차례를 지켜나가는 것이라든지, 예를 들면 한이 없을 정도로 우주의 모든 일들은 정확하고 성실하다.

가령, 우주의 운행이 일초일분이라도 멈춘다든지 성실성을 잃어버린다면 우주는 즉시로 파멸해 버리고 말 것이고, 지구도 인간도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 진다. 인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물의 영장(靈長)으로 소우주(小宇宙)를 자처해 오는 인간은 마음도 몸도 행동도 오직 성실에 의해 지탱이 된다. 성실성이 사고(思考)에서 빠져 버리거나 신체에서 제외되거나 행동에서 결여된다면 그런 인간은 인격적으로 파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을 두 다리로 서서 앞으로 걸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영국 속담에 “정직이 최선의 정책” 이라는 말이 있다. 정직이야말로 성실성의 표현인 것이다.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가정생활에 있어서 성실성은 가장 좋은 처세법이 되며 가장 바람직한 가도(家道)의 정립에 바탕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더러 화려하고 화사한 것에 마음을 쏟고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 신경을 쓰는 수가 있어 가정에서도 그런 것이 가풍(家風)처럼 남아 눈에 비쳐지는 수가 있지만 이런 현상은 “내일의 가정“을 위해 결단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가정구성원은 모두가 화려함 보다는 소박함을, 형식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는 성실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서로 진정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성실성은 일상적인 자잘한 일에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가령 부모와 자녀사이, 형제자매 사이의 하찮은 대화에서도 성실성이 스며있지 않다면 그 대화는 알맹이가 없이 무작정 헛돌고 말 것이다, 서로의 뜻은 조금도 전달되지 못한 채 끝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족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마련해 준 셈이 되고 서로를 불신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불성실한 대화는 애당초 시작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대화가 아니라 헛소리인 것이다. 가정에 있어서 일상적인 일도 이와 같다. 청소를 할 때 성실성이 없다면 대충대충 뭉뚱거린 꼴이 돼서 결국 다시 되풀이해야 될 것이고, 가구나 도구를 손질할 때도 성실하게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 이런 일들은 불성실한 대화와 마찬가지로 애당초 시작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성실성은 일의 시작이고 끝이다.(誠者物之終始也:성자물시종시야) 성현의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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