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자국민이 죽더라도 중국인을 우선적으로 살려내야 하는 나라는 아마도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우한폐렴’의 왕성한 전염성 앞에서 마스크는 일차적인 최우선의 방역 수단이다. 전국적으로 국민들이 마스크 구입을 위해 장사진을 치며 사투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매일 100만장씩 마스크를 중국으로 보내고 있다는 지상욱 의원의 국회 폭로내용은 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허탈하게 한다. ‘우한폐렴’ 사태에 즈음하여 문재인 정부의 중국에 대한 굴욕적 행동은 너무나 맹목적이고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아마도 중국에 대한 과대망상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주석은 지난 2017년 4월 미국 방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역사적으로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가 그렇다”고 강조하여 설명하였다. 한국에 대한 역사적 종주권을 미국에 설명한 외교적 무례와 거만을 담은 언행이다. 그 말 속에는 미국보다 중국이 한국과 더 가까우며, 그 관계도 종속관계인 것을 설명하여 향후 한미동맹에 금을 긋고 한중관계를 강화하겠다는 당부와 양해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무례에도 문재인 정부가 별다른 외교적 반응을 보였다는 흔적이 발견된 바는 없다. 또 시진핑은 공산당 부주석 시절인 2012년 북한을 방문하여 6.25 전쟁을 “정의로운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었다며 한중수교 이후 견지해온 불문율을 깨고 북·중관계의 혈맹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 두 사례는 시진핑의 중국이 한국을 보는 근본 척도이다. 중국판으로 해석하면 한국은 결코 중국의 친구가 아니며, 신하국이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 일부의 환상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한 말처럼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아니고 어려울 때 원하는 것을 바쳐야할 신하국일 따름이다. 이 같은 중국의 입장을 모를 리 없음에도 문재인 정권은 북핵문제와 북한 문제를 구실로 중국을 상전처럼 섬기면서 온갖 굴욕을 감내하고 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하나의 목적인 혁명만 보고 달리는 공산당원들의 특유의 전략전술과 같은, 목적지향적 확증편향성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다. 오로지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내고 북한 중국과의 관계를 당기려는데 모든 정책의 주안점을 두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며칠 전 문 대통령은 한국이 중국과 공동운명체라고 말하였다. 문 대통령이 한 가지 간과하는 게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제로섬의 관계였다. 중국의 국력이 강성할 때는 침략을 일삼아 한반도에 전란을 가져와 지배력을 행사하였고, 중국의 힘이 약할 때 비로소 한반도에는 평화가 깃들었으며, 우리와 중국이 함께 평온을 유지한 때는 오로지 주종관계에 놓여 있을 때뿐이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을 모시다가 피할 수 있는 전쟁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몽고와의 전쟁, 병자호란 등은 명분론에 싸여 국제정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신주처럼 모신 사대적 노예정신 때문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당시의 선조들은 거의 몰살되다시피 하였고 전 국토는 유린되었다. 거란족의 침입 때 송나라를 침공하려는 거란의 의도와 뒷마당(고려)이 불안한 거란의 심중을 헤아린 서희 장군의 국제정세 판단은 소손녕의 80만 대군을 외교담판으로 물리친 바 있다. 맹목적 확증편향성이 아니라 실리외교가 효력을 발생한 본받을만한 역사적 사례이다. 오늘날 21세기의 한국에서 아직도 문 대통령은 한국이 중국과 공동운명체라며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우한폐렴’과 사투하는 국민들의 절규, 마스크 지원도 충족 못하면서 뒤로는 중국에 매일 100만개씩 지원하고 있다니 말문이 막힌다. 2월 중순에 확인된 것만도 이미 300만개를 지원했다. 최근에는 국민들이 아우성치자 마치 처음 안 것처럼 지난 3일 정부에 “수요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실을 그대로 알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중국에 먼저 주고 남은 게 별로 없으니 알아서 참고지내라는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게 들린다. 영국인들의 속담 아닌 속담에 ‘길가다 코브라와 인도인을 함께 만나면 인도인부터 먼저 죽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인도인들이 얼마나 어긋난 짓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역사에도 중국인만큼 우리민족에 어긋난 짓을 한 나라는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1637년 2월 인조가 삼전도에서 무릎 굻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쳐 박는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군신의 예를 올렸다. 머리에 피가 질질 흘렀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머리는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의 가슴에는 이미 피가 질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