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배신자와 이단자는 비슷한 것 같으나 몸담던 조직에 해악을 끼치는 데에는 많은 차이가 난다. 배신자는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 반대편에 서서 싸우기 때문에 끼치는 해악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단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가치와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조직에 붙어서 가치를 공유하는 양 행동하며 혼돈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자는 조직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며, 그들의 언행은 가끔 이적 질이나 간첩 질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성을 잘 알기 때문에 급진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온건사회주의자인 칼 카우츠키를 이단자로 보고 자본주의자보다 더 맹렬히 비난하였고, 스탈린은 온건 이론가 트로츠키를 오히려 더 진지한 위험 세력으로 보고 멕시코까지 추격하여 그를 암살하였다.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하다.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이단자들의 역할이 주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박근혜 정권에서 비박의 핵심이었던 김무성, 유승민 같은 자들, 이들은 일종의 이단자들로서 이번 총선에서 보수정당을 세우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향후 권력을 위하여 뿌리를 내리는 착근 작업을 추진하였다.

이들 입장에서는 당의 정체성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정치현장에서 살아남는 일이 급선무다. 그래서인지 김무성은 지난 2월 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느닷없이 ‘이원집정부제’를 거론하며 개헌 문제를 들고 나와 보수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였으며, 유승민은 합당 조건으로 당명 변경을 고집하며 전통적인 보수정당의 당명을 미래통합당으로 변경토록 유도하여 일반 유권자들이 ‘이 당이 보수정당이 맞기는 한가’라는 의혹을 사게 했다.

이와 함께 당의 정체성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또 하나 주목할 대상은 황교안과 김종인이다. 누가 황교안을 당대표로 옹립한 세력인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옹립세력들은 있다. 그들의 목적은 정치에 둔하지만 무늬가 좋은 황교안을 활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는데 있었지 반드시 황교안을 선호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비춰진다. 공천이란 수단을 통해 위협적인 당내 정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하였지만 황교안이 출마한 종로구의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새로운 보완 카드로 김종인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끌어들였고, 선거에 참패하자 김종인을 또다시 당 비대위원장으로 옹립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보수정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상 이미 정당의 가치가 불명확한 정체성 없는 정당으로 변질되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중도보수’ 또는 ‘개혁보수’를 주장하는 이단자들이 주도하는 가짜 보수정당일 뿐이다. 당내에서 일정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선거참패로 자신들의 계획이 어긋나자 새로 당선된 의원들의 의사와는 별개로 향후의 핵심 당직인사를 그들의 잣대로 미리 짜놓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세력들을 보수 세력으로 믿거나 정통 세력으로 믿어서는 헛다리를 짚는 셈이 된다. 결국 제대로 된 이념과 가치를 지닌 보수정당은 지금 한국 내에는 없는 셈이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우파정당이다. 대한민국을 설계한 이승만에서부터 박정희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주의체제와 법치주의, 시장경제원리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초하여 국가의 하드파워를 건설해온 전통 있는 정당이다. 그러나 보수우파정당은 민주, 인권, 평등, 분배, 노동 등 인간 생활과 직결된 소프트파워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좌파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왜냐하면 그간 보수정당에는 웰빙 세력이 주축을 이루어 중하층 국민들의 고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향이 있어 왔기 때문이며, 또 요즘의 세대들이 국가체제와 국방, 안보 등의 중요성을 잊고 현실생활을 즐기며 불편함을 못 참는 성향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중도보수’나 ‘경제민주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따라갈 경우, 죽도 밥도 안 된다. 이단자들은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21세기 시대정신은 소프트파워 분야가 중시되고 있지만 이 분야는 보수우파정당이 상대적으로 미진하고 열등한 게 사실이다. 보수의 가치를 무시하고 좌클릭 방안만을 찾으며 야합하려는 이단자들을 제쳐두고 민주, 인권, 분배, 평등, 노동 등 소프트파워 분야에서 좌파정권의 실정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되면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미래한국당 의원들만큼이라도 정신을 차려 제목소리를 내면 이단자들이 장악하여 가짜 보수정당이 된 미래통합당이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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