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때부터 그림 그리기 시작
힘들 때는 밤에 혼자 울기도
진주에서도 만화가 활동 가능
재능은 30프로 노력이 70프로

제7회 일요신문 만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정상훈씨. 사진/최지은기자

그림책을 따라 그리던 5살짜리 꼬마가 대중에게 행복을 전하는 만화가로 성장했다. "세대를 뛰어넘는 만화가가 되겠다"는 그는 국립 경상대학교(총장 이상경) 대학원 문화융복합학과에 다니는 정상훈(사진) 씨다. 정씨는 제7회 '일요신문 만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인터뷰 요청에 권호종 지도교수와 함께 자리하길 원한 정씨는 정신적 지주로서 권교수에 대한 고마움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공모전 결과를 처음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너무 좋았다. 날짜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10월 초쯤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있다 전화를 받았고 순간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당선작이 정치 드라마 장르이다. 제목 ‘보일러’는 어떤 뜻인가?
제목은 글을 쓴 이동화 선생님이 정했다.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보일러’는 서민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행복의 상징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이동화 선생님과는 10년 넘게 봐왔지만 작업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만화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던 때 스토리를 보고 욕심이 났고, 결정적으로 이걸 내가 그리면 누구보다 잘 그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왜냐면 선생님의 스토리 글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면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선생님 역시도 내가 어떤 장점을 갖고 있고 기술적으로 어떤 표현을 할 수 있는지 알고 배려해주셨다. 아마 이동화 선생님 글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안 했을 거다.

공모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만화 전공 후 만화가 데뷔를 준비하며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사이 작품으로 내 목소리를 내보질 못했다. 때문에 내 색깔의 만화가 무엇인지 짧은 시간 안에 고민해야 하는 게 참 힘들었다. 원고 작업 하면서 힘들 때 밤에 혼자 울다가 다음날 권교수님을 찾아가면 아무 말 없이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 부분이 권교수님께 제일 감사하는 부분이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나?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림책을 사 주셨는데 다 읽고 나서 새 책을 사달라고 말씀드리기 미안해 다 읽었다는 증거로 그림책 속 그림을 모두 따라 그렸다. 그걸 보여드리면 어머니가 다른 책을 사주셨다. 근데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니까 어머니가 계속 새 책을 사주시기 부담스러웠는지 만화책을 사주셨다. 그렇게 6살 때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원래 고향은 부산이고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진주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2012년에 왔다. 그리고 올해 초 문화융복합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정상훈씨의 습작 그림. 정씨는 이미 다음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정상훈씨의 습작 그림. 정씨는 이미 다음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과 이름이 조금 생소하다. 문화융복합학과는 어떤 공부를 하는 곳인가?
인문학 기반 IT와 경영을 접목해 융·복합형 창의 인재 양성을 목표로 대학원 학과 간 협동과정으로 개설된 과이다. 전공이 모두 달라 같은 현상을 보고도 각자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견해를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번 학기 과제로 ‘3일’이라는 단편 영화를 찍었다. 만화만 그리던 내가 봐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우리 학과를 통해 다른 문화 콘텐츠를 더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된 셈이다. 나 스스로 좋은 학생이 되니까 어딜 가도 배울게 있더라.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장인 이현세 작가를 비롯 허영만, 장태산 등 선배들의 작품을 보면서 자랐다고 했다. 그들 작품이 본인 그림체나 스토리에 어떤 영향을 줬나?
어렸을 때 본 만화를 그린 사람들은 모두 내 스승들이다. 제자가 스승의 발자국을 보고 따라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현세 선생님의 까치 머리는 붓으로 하는 거라 연필로 하는 게 정말 어렵다. 내가 그 어려운 걸 해내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웃음)

선배들 작품 중 최고로 꼽는 게 있다면?
나는 최고를 정하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할 것이기 때문에.(웃음) 최고 작품보다는 특정 장르 중 가장 재밌는 작품을 꼽는 게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액션 만화는 드라마나 서사적인 부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장르 특성상 장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재미란 곧 취향이고, 나는 내 취향의 가장 재밌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 만화가가 되려는 것이다.

대상 수상작 '보일러'의 한 장면
대상 수상작 '보일러'의 한 장면

프로 만화가로 활동하기엔 진주보다 수도권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어떤가?
요즘 인터넷이 너무 발달해 어디서 원고를 그려도 크게 상관이 없다. 만화가의 장점이랄까. 그리고 나는 장소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주변에 좋은 얘기를 해주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딱히 수도권으로 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앞으로 어떤 만화가가 되고 싶은가? 만화가로 성공하고 나면 다시 교육자로 돌아갈 계획이 있나?
세대를 막론하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볼 수 있는 만화를 그리는 게 꿈이다. 제자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좋은 길을 가고 좋은 발자국을 남겨서 제자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도 휴일이면 이동화 선생님 학원 가서 제자들하고 같이 놀고 만화도 그리고 한다.

이제 <일요신문>에 본인 작품이 연재가 될 텐데,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나?
우선 재밌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은 만화를 보고 내용을 떠올리며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만화는 제작 단가가 싸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콘텐츠 실험용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규모가 큰 드라마나 영화를 만화로 먼저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그 반응을 보면서 제작 단계의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화의 가능성은 크다. 앞으로 OSMU(One-Source Multi-Use)의 중심에 만화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 중심에서 <보일러>가 일조했으면 한다. 


끝으로 만화가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예전에는 불같이 만화를 그렸다. 며칠 밤을 새우며 불같이 그림을 그리는 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보일러>를 하면서는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자고, 규칙적으로 매일 지치지 않고 원고를 그렸다. 매일매일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나가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모든 재능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재능은 30%고 노력이 70%라고 생각한다. 어린 친구들이 부족한 부분에 좌절하지 않고 보완할 방법을 찾아가며 지치지 않고 꾸준히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그림제공=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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