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회사 경영해 연매출 250억
진주에 거래처들 많아 지사 운영

진주 내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 하고파

기회되면 진주농산물 일본에 알리고싶어
중국서 만든 제품 세계최고 되는게 목표

도우메이 그룹 전흥배 회장은 경영자로서 원칙을 ‘상호신뢰와 정직’이라고 말했다.
                            도우메이 그룹 전흥배 회장은 경영자로서 원칙을 ‘상호신뢰와 정직’이라고 말했다.

도우메이 그룹 전흥배 회장은 진주시 진양군 문산면에서 태어나 문산초등학교, 문산중학교, 진주대동기계공업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은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어린 시절 집안 일이 농사여서 여름에는 소꼴을 캤고, 겨울 되면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당시 전 회장에게 진주 시내는 일년에 한 두 번 밖에 갈 수 없는 먼 곳이었다. 논에서 보리농사 하며 바라본 진주행 버스들은 그에겐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는 잡채인데 과거 개천예술제 때 남강 다리 밑에서 팔던 것을 본 이후 평생 즐겨먹는 음식이 됐다. 그는 지금도 일본 한국식당에 가면 반드시 잡채를 주문한다.

전 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81년 3월1일 곧바로 창원 동명중공업에 입사해 연구소에 배치 됐다. 주업무는 일본 유압 브랜드와 기술제휴 후 국산화 개발 일이었다. 그렇게 97년 7월 일본 주재원으로 부임할 때까지 17년간 전 회장은 연구소에 있었다. 일본의 가와사키, 데이진세이키 회사와 기술제휴하고 국산화를 추진하며 소재, 부품 국산화 개발공로로 89년엔 상공부장관상도 받았다.

하지만 주재원 사무소가 폐쇄되고 전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입장에 처한다. 일단 아이들 학업 문제가 걸렸다. 그는 본사 사장님과 상의 후 양해를 구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에서 자립을 한다. 도우메이 그룹의 시작이다.

도우메이 그룹은 크게 4개 회사로 구성돼 있다. 건설기계, 유압기계, 농업기계에 사용하는 기계부품을 한국에서 OEM 개발하는 도우메이엔지니어링, 일반 고객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설립한 도우메이 테크, 도우메이 엔지니어링이 36만불을 100% 출자한 중국 소주구흥 정밀기계 유한공사, 그리고 지난 11월 설립해 창고관리와 JIT 납품을 담당하고 있는 도우메이 물류까지다.

도우메이 그룹의 주거래처는 일본 미츠이스미토모은행, 긴키은행, KEB HANA은행 등이다. 회사 매출은 2016년 12월 결산 기준 전체(엔지니어링/테크) 190억원, 올해는 25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전 회장은 내다봤다. 직원은 중국인 포함 42명으로 이 중 일본인은 23명이다. 23명중 19명은 정사원, 4명은 계약직이다.

전흥배 회장에게 일본은 ‘사업하기 좋은 나라’다. 일본 기업들은 갑을 관계를 내세워 상대방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자기가 강한 입장에 있더라도 상대 입장을 존중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또한 일본은 학연, 지연, 혈연 관련 차별은 물론 외국인 차별도 거의 없다. 결정적으로 일본에선 아무리 소기업이라도 좋은 제품을 가지고 열심히만 하면 대기업과도 얼마든지 거래를 할 수 있다. 사회구조 자체가 더불어 살자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전 회장은 2015년 11월 일본 오사카 지역 해외시장 동향 파악 등 진주시의 해외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진주시 제3호 국제통상자문관’으로 위촉됐고, 현재 일본 관서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뉴커머들의 단체인 일본관서한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진주 농산물들을 일본에 소개하는 일과 진주 내 고등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을 고향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라고 밝혔다.

1990년 4월 가족들과 함께. 전흥배 회장의 집안은 선대부터 진양 문산 출신이다. 아버지는 2002년 2월, 어머니는 2010년 10월 고인이 되었다.
1990년 4월 가족들과 함께. 전흥배 회장의 집안은 선대부터 진양 문산 출신이다. 아버지는 2002년 2월, 어머니는 2010년 10월 고인이 되었다.

◇“여름이면 소꼴 캐고 겨울엔 나무 하러 다녔다”

-진주에서 쭉 자란 건가.

△진양군 문산면 옥산리에서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후 문산초등학교, 문산중학교, 진주대동기계공업고등학교, 그리고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문산면 옥산리 386번지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때는 진주에서, 대학교 때는 부산 장전동에서 자취를 했다.

-부모님도 같은 곳 출신이신가.

△선대부터 지금은 진주시로 편입된 진양 문산 출신이다. 아버님은 2002년 2월, 어머니는 2010년 10월 작고 하셨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

△중학교는 시골 학교였다. 고등학교 동기들도 대부분 시골 출신으로 성실한 동료들이 많았다. 당시 공고는 기능사2급 자격증을 딸 자격을 줬는데, 각 학교가 자격증 합격률에 따라 대외 학교 평가 기준을 가늠하던 시절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런 자격증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애를 많이 쓰시던 분이었고 우리 학교는 그에 부응해 합격률이 높은 편이었다. 나는 기계제도 전공으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도 진주 근교에서 기계관련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동기들이 많다.

-형제는 어떻게 되는가. 모두 진주에 거주 중인 건지.

△3남2녀다. 형님은 울산, 동생은 현재 진주 시내에 거주 중이다. 누님들은 춘천, 포항 등 타향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진주는 어떤 곳이었나.

△문산면 옥산리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쭉 옥산리에서 생활했다. 집안 일이 농사여서 여름에는 소꼴(소에게 먹이는 풀) 캐고, 겨울이 되면 산에 나무하러 다녔다. 쌀농사가 끝나면 2모작으로 보리농사도 하던 시절이다. 그때 나에게 진주 시내는 일년에 한 두 번 밖에 갈 수 없는 먼 곳이었다. 논에서 보리농사 작업을 하고 있으면 진주 가는 버스들이 보였는데 나에겐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보리씨를 뿌릴 즈음 진주 개천예술제가 열렸다. 나는 개천예술제에 항상 가고 싶어 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보리씨 다 뿌리면 개천예술제에 보내주마” 해서 쉬지 않고 열심히 일 했었다. 개천예술제 구경을 가면 남강 다리 밑에서 파는 잡채가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돈 아낀다고 못 먹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잡채다. 이곳 한국식당에 가면 반드시 잡채를 주문 하곤 한다.

-가족, 지인들과는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인가.

△부모님 기일에는 가능한 형님 집에 간다. 고등학교 동창들과는 가끔씩 연락 한다. 사업상 진주에 있는 중소기업 기계가공부품을 수입하고 있고, 대기업에도 기계용품을 수출하고 있어 연관되는 부문이 있다.

가족들과 벚꽃놀이. 전 회장은 자녀들 교육문제가 있어 다니던 회사 일본주재원으로 생활 하다 오사카 현지에 회사를 설립, 정착했다.

◇경영자로서 원칙은 ‘상호신뢰와 정직’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된 건가.

△처음부터 사업을 하려고 생각한 건 아니다. 다니던 동명중공업의 일본주재원으로 부임 중 주재원 사무소가 폐쇄 되었고, 아이들 교육문제도 있어 그대로 오사카 현지에서 회사를 설립해 독립을 한 것이다. 그 동안 회사생활에서 익힌 부문을 살려서 기계부품 및 제품의 수출입, OEM개발 등 일을 하게 됐다.

-2000년에 도우메이엔지니어링을 창업 한 걸로 안다.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창원 동명중공업에 입사해 연구소에 배치 됐다. 1981년 3월1일 일이다. 유압기기 기술 쪽에 배속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의 유압기술 수준이 그리 높지 못했다. 이와 관련 일본의 유압 브랜드와 기술제휴 후 국산화 개발 일이 주업무였다. 그렇게 97년 7월 일본 주재원으로 부임할 때까지 17년간 연구소에 있었다. 일본의 가와사키, 데이진세이키 회사와 기술제휴하고 국산화를 추진하며 소재, 부품 국산화 개발공로로 89년엔 상공부장관상도 받았다.

-창업 스토리를 듣고 싶다.

△주재원 사무소 폐쇄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입장이었지만 아이들 학업 문제로 본사 사장님과 상의 후 양해를 구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립을 하게 됐다. 처음 시작할 땐 제대로 자립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가족들 생계도 책임져야 하고 스스로 노력해 일구어 나가야 한다는 중압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20년간 회사생활로 다져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어느 때보다 열심히 또 성실히 임했다.

-도우메이는 어떤 회사인가.

△도우메이 그룹은 크게 4개 회사로 구성돼 있다. 우선 도우메이엔지니어링은 건설기계, 유압기계, 농업기계에 사용하는 기계부품을 한국에서 OEM 개발해 수입, 재고 관리 하면서 일본 고객에게 JIT(적기공급생산, Just In Time) 납품을 하고 있다. 주물 소재부터 기어, 기타 기계가공품이 대부분이다. 기계부품 수출도 하고 있는데 특수 기계부품을 OEM 개발해 한국의 건기, 유기, 농기업체로 수출하고 있다.

도우메이 테크는 일반 고객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B to C(Business to Customer) 영업을 한다. 현재 일반 식품관련 생활용품을 한국과 중국에 OEM 제조해 일본 내 인터넷 판매, 대리점 판매를 하고 있다. 영업은 순수 일본인들로만 구성돼 있다.

중국에는 도우메이 엔지니어링이 36만불을 100프로 출자한 ‘소주구흥 정밀기계 유한공사’가 있다. 저, 고압기어 펌프를 제조해 현지 가와사키, 얀마농기, 중국 업체들에 납품 하고 있고, 지난10월부터는 도우메이가 일본으로 수입해 얀마와 코벨코건기 등에 납품하고 있다. 이곳엔 오랜 경험을 가진 일본인 설계기술자와 가공기술자를 고용하고 있다.

또한 지난 11월 설립한 자회사 도우메이 물류는 창고관리 및 JIT 납품을 담당하는 곳이다.

-사업 하면서 어려움, 고비 같은 건 없었나.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지도 모르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어야 했던 건 있다. 특히 고객의 OEM 개발은 시간이 많이 걸려 영업으로 연결되기까지 인내심이 필요했고, 창업 당시 한국 부품들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영업에 애로사항이 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업이 그렇듯 고객과의 상호신뢰와 성실한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OEM영업은 서로간 신뢰가 없으면 어렵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오신 한 중소기업 사장님과 일본업체를 방문하면서 내 걸음걸이가 너무 빨라 따라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타국에서 경쟁하려면 외지인이라는 핸디캡이 있으니 일본 사람들과 같은 걸음으로는 이길 수 없지요”라고. 그런 마음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경영자로서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경영자로서 내가 내세우는 원칙은 상호신뢰와 정직이다. 사업 하면서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손실이 있더라도 사실에 기반해 일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업상 이익을 얻기 위한 행위는 사업이어서 최대한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정직하지 못한 행위를 하면서까지 그러진 않는다. 직원들에게도 항상 솔직하고 거짓말 하지 말라 당부한다. 정말 곤란할 땐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더 곤란할 땐 말을 아예 하지 말라고 한다.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니까. 나 역시 그렇게 한다.

-존경하는 또는 영향 받은 사람이 있다면.

△영향을 받았다면 어릴 때 함께 산 부모님이겠다. 언제나 열심히, 바르게 살라고 말씀하셨다.

한국언론기자연합회 ‘글로벌 재외동포대상’을 받은 전흥배 회장. 전 회장은 현재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와 정착한 한국인 뉴커머들의 단체 일본관서한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한국언론기자연합회 ‘글로벌 재외동포대상’을 받은 전흥배 회장. 전 회장은 현재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와 정착한 한국인 뉴커머들의 단체 일본관서한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일본 사업 환경은 ‘더불어 살자’는 분위기

-일본과 한국의 사업 환경, 무엇이 다른가.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우선 ‘갑과 을’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한국에선 갑이 힘이 세다고 생각해 무리한 요구를 많이 하지만 일본은 서로가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자기가 강한 입장에 있더라도 상대 입장을 존중하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은 갑이든, 을이든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 일본은 학연, 지연, 혈연과 관련한 차별이 거의 없다. 상대가 대기업이어서인진 몰라도 외국인이라고 차별당한 적도 없다. 나는 고객과 상담 시 한국사람이라고 분명히 이야기 한다. 일본인들은 상대가 외국사람인 것 같으면 눈치 보며 물어보질 않는 경우가 많다. 발음을 들어보면 일본사람은 아닌 것 같고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대만사람인지. 그들은 내심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다. 일본에선 아무리 소기업이라도 좋은 제품을 가지고 열심히만 하면 대기업과도 거래를 할 수 있다. 사회구조 자체가 더불어 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귀담아 들어주는 사회랄까.

-회사의 주거래처는 어디인가.

△일본 미츠이스미토모은행, 긴키은행, KEB HANA은행 등이다.

-직원은 어느 정도 되나. 일본인과 한국인 비율도 궁금하다.

△중국인 포함 42명이다. 일본인은 23명인데 그 중 16명이 일본인, 7명은 한국 국적이다. 23명중 19명이 정사원, 4명이 계약직이다.

-회사 매출을 밝혀줄 수 있나.

△2016년 12월 결산 기준 전체(엔지니어링/테크) 190억원이다. 올해는 중국 소주구흥정밀 20억원에 전체(상동) 230억 포함 총 250억원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렇게 많은 매출은 아니다.

-지사를 진주에 두고 있다. 서울이나 광역시 쪽에 지사를 두는 게 더 유리할 것 같은데.

△진주에 거래처가 많다. 중소 기계가공업체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경산지식산업지구 내 230만 달러 투자 약정’은 도우메이에 어떤 의미를 띠는가.

△한국에서의 제조업은 성숙기에 접어들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중국에 제조공장을 설립했다. 한국에서 제조업은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봐도 무방하다. 내가 하고자 했던 유압기기는 특히 그랬다. 그런데 3년 전 대구 경북 경제자유구역청의 아는 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당사 거래처를 소개해 투자설명회 개최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계속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국가공단으로 조건이 좋아 투자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해외투자 제1호’라고 한다(웃음). 그런 의미에서 언론에 소개가 된 것 같다. 여건상 투자금액도 크지 않아 사실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렇다.

3년 전 일본도 기계제조업이 어려운 환경이라 선뜻 투자에 나서는 업체가 없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일본 대기업도 투자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오사카 한일친선협회 통상 총회에서. 전흥배 회장은 지난 2015년 ‘진주시 제3호 국제통상자문관’으로 위촉 됐다.
오사카 한일친선협회 통상 총회에서. 전흥배 회장은 지난 2015년 ‘진주시 제3호 국제통상자문관’으로 위촉 됐다.

-한국엘 자주 오실 것 같다.

△한국은 일 할 때 간다. 1달에 1번 정도다. 진주는 2달에 1번 꼴로 간다. 물론 2번, 3번 갈 때도 있고 때마다 다르다. 중국도 2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하고 있다. 어릴 땐 진주와 문산 거리도 꽤 멀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일본과 한국마저 가깝게 느껴진다. 그만큼 국제화가 됐다는 방증이겠다. 일본과 한국은 이제 일일 생활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내가 어릴 때 느낀 진주-문산 간 거리감보다 더 가깝게 느끼는, 마치 이웃 도시처럼 여겨진다.

-따로 취미 활동 같은 건 하는지.

△휴일엔 주로 골프를 친다. 한 10년 전부터 시작했다. 가까운 한국친구, 일본친구들과 라운딩을 한다. 아내도 골프를 좋아해 같이 가기도 하고. 그리고 바둑도 좋아한다.

-일본 오사카 지역 해외시장 동향 파악 등 진주시의 해외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진주시 제3호 국제통상자문관’으로 위촉 됐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맞다. 영광이다. 별도 도움도 못 드리는데. 2015년11월 이창희 시장님이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 선임을 받았다. 이 시장님은 그때 시장 조사 차 왔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론 교육의 도시, 문화의 도시, 관광의 도시 진주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 진주에 있는 기업들이 세계로 뻗어나가 수출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직원들과 함께. 도우메이 그룹의 직원수는 중국인들 포함 42명이다. 일본인은 23명인데 그 중 16명이 일본인, 7명은 한국 국적이다.
직원들과 함께. 도우메이 그룹의 직원수는 중국인들 포함 42명이다. 일본인은 23명인데 그 중 16명이 일본인, 7명은 한국 국적이다.

-현재 일본관서한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단체 설명 좀 부탁 드린다. 

맞다. 관서한국인연합회는 일본 관서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뉴커머들, 그러니까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와 정착한 한국인들 단체다. 한국 국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회원은 약1500여명이 가입돼 있다.

우리 단체에선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 한인운동회, 민족학교 장학금모금을 위한 치리티 골프대회, 연말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치겸 가라오케 대회, 민단을 비롯한 각 단체와 교류 등이다. 

오사카는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다. 특별 영주자가 약10만 명, 뉴커머가 약 2만명 있다. 일본관서한인회는 한국인들의 권익신장과 위상강화를 위해 민단 등과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다.

-고향 진주를 위한 계획 같은 게 있나.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다. 다만 진주의 특산물을 일본에 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내가 주로 하고 있는 분야가 기계여서 한계는 있겠지만. 또 기회가 되면 진주 내 고등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을 하고 싶습니다.

-경영자로서 향후 계획과 목표 한 말씀 부탁 드린다.

그렇게 거창하게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착실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단 지난 10월 설립한 도우메이 물류의 자립이 최우선이다. 기존 업 또한 지속적인 경영유지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업이 되길 원한다. 중국에서 제조하는 우리 제품이 중국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최고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김성대 기자 사진제공=전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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