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배(72, 스페인 이름 '루이스 마리아 우리베') 신부. 무려 37년간 산청 성심원에서 한센인들을 돌봐 온 사람이다. 유 신부의 고향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다. 사람들에겐 피카소의 작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게르니카는 1937년 스페인 내란 중 파시스트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 나치의 무차별 폭격을 당한 곳으로 당시 유 신부의 조부와 부친, 모친이 모두 이 사건을 겪었다. 빵을 만들어 판 부모님의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사제였던 삼촌의 모습에 매력을 느껴 신부가 될 결심을 하게 된다. 유
경남 산청군 차황면 제이씨블루베리 농원 최석환 대표는 해병대 장교로 군생활을 했고, 퇴직 후 귀농해 현재 5년차 농부다.최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그는 평소 마도로스를 꿈꿔 선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20대 당시, 다른 직업보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사회 분위기였다. 이에 최 대표는 꿈을 접고 공부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 재수를 한다.그는 꿈을 위해 1년 뒤인 1981년 해군 사관학교에 합격해 군인의 길로 갔다. 그 뒤 해병대로 지원, 1985년 소위로 임관해 군인이 되었다. 첫 발령지로는 김포 해
하동 산골에서 60억 매출을 올리는 에코맘 산골이유식 오천호 대표는 올해 37세다. 오 대표는 하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진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간 오 대표는 전공을 살려 화장품영업을 한다. 6~7년 간 화장품 영업을 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압구정동에 죽집을 창업한다.죽집은 성황이었다. 넘쳐 나는 손님으로 오 대표는 항상 바쁘게 지냈지만 힘든 일에 비해 순이익이 형편없었다. 서울의 높은 물가와 임대료, 인건비 등으로 매출이 높아도 가져가는 돈이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 대표 죽집에 온 여자 손님이 있었다
진주를 넘어 전국을 넘보는 더 웨이닝 커피(The Wain-ing Coffee)는 2005년 ‘Take Out with Coffee’라는 로드 카페로 시작했다. 윤기남 대표(36)가 옛 사람들의 길잡이였던 북두칠성(WAIN)처럼 커피의 길잡이가 되리라는 바람으로 만든 브랜드다. 브랜드명은 카페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택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카페이기에 이 공간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고 윤대표는 말한다.윤대표는 과거 노점 장사가 너무 부끄러웠다. 어렸을 때 추리닝 입고 동네 슈퍼에도
주용환(59) 사천경찰서장은 시를 쓰는 경찰이다. 우리나라 전체 경찰을 털어 시를 쓰는 경찰서장은 유일하다 할 만큼 특이한 사람이다. 하동경찰서장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부임해 가는 지역마다 그 지역 특산물 등으로 시를 써서는 행사 때 낭송하기도 해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에는 경찰서장이 시를 써와서는 낭송을 하니 이상하게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알려져 오히려 낭송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정도이다. 시를 쓰는 경찰서장에 대해 사람들은 “경찰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해 경찰에 대한 인식을 좋게 한다”고 평가하
에코비오스는 수의학 박사 조항희 대표가 2017년 5월 창업한 바이오 기업이다. 이 회사는 현재 당뇨병 환자에 특화된 야쿠르트를 개발·판매 중이다. 34세 젊은 대표가 창업한 회사지만 내실 있는 운영으로 많은 투자자가 모집됐다. 현재는 중소벤처기업부 공모전에 당선 돼 또 다른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조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사업하던 아버지를 따라 부산, 순천 등으로 옮기며 살아왔다. 그래서 초등학교는 부산, 중·고등학교는 순천에서 졸업했다. 이후 전남대에서 생물학으로 학·석사를 받고 이후 전
진주시 정촌면 삼일로에 30세 젊은 사장의 세차장이 있다. 안태규 대표의 붐워시로, 주6회 세차 하던 안 대표가 대구에서 진주로 귀향해 창업했다.안 대표는 진주에서 태어나 5세 때 대구로 이사 갔다. 진주 대동금속에 다니던 아버지가 본사가 대구로 이전됨에 따라 가족이 같이 간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대구에서 다닌 안 대표는 대학은 충주시 한국교통대 전기과를 졸업했다. 이후 군대를 다녀오고 대구에서 취업했다.취업 후 안 대표는 차를 구입했고 그 뒤 세차는 그의 취미가 됐다. 주 6일 정도 세차를 하고 세차동호회 활동도 하면서 그는 세차
정재욱. 30대에 수십억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혜승건설 대표다. 그는 진주 호탄동에서 태어나 4살 때 인사동으로 이사, 거기서 25년을 산 진주 토박이다. 진주초등학교, 봉원중학교, 대아고등학교를 나와 건축 공무원이었던 부친의 권유로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다. 천성이 활발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이어서 경상대 재학 시절 공대 회장에 총학생회 회장까지 역임, 현재는 건설사 대표 직함 외 경상대 동문들로 구성된 개척산악회, 젊은 사람들의 진주 역사 공부 단체 진주청년포럼, 700만 소상공인 법정 대표단체 소상공인연합회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하동군 악양면 지리산대박터 농장. 농장 대표 서훈기씨(52)는 9년 전 귀농해 현재 1억4천만원 매출을 올리고 있다.서 대표는 고향이 하동군 악양면이다. 부모님은 고향에서 단감 농사를 지었다. 시골에서 자란 그는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제약사에 입사해 영업을 배우고 경험을 쌓았다. 2년 뒤 그는 퇴직 했고 용인에서 농산물바이어로 활동했다. 시골에서 자라 농산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었고 부모님 밑에서 농사일을 도왔던 게 경험이 돼 자연스럽게 농산물바이어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제약사 영업사원을 경험한 것도 농
임지은(36, 구미 바른유병원 원장)씨는 의사와 아나운서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본인은 ‘병행’이라는 말을 선호하진 않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는 진주에서 나고 자랐다. 초,중,고,대학교를 모두 진주에서 다녔다. 어린 시절 조용한 성격에 중소도시에 산다는 현실까지 겹쳐 열등감을 겪었지만 그 열등감은 의대 진학과 더불어 모두 날아갔다. ‘공부면 다 되던’ 시절. 대학 생활은 그의 내면에 잠재돼 있던 적극성과 활기를 끄집어 내줬고 임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에 임했다. 그런 그가 아나운서 생활을
학의 모습을 무용으로 만든 ‘학춤’이 있다.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설이 있는 우리나라 전통 춤인데 아직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학춤’에 미쳐 결혼도 미룬 채 평생을 학춤의 보급과 무형문화재로 지정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학춤’ 전승자 월산 박계현 선생(57)이다. 월산 선생은 진주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크게 진흥시킨 전 진주문화원장, 경남일보 사장 등을 지낸 박세재 선생의 막내딸이다. 누구보다 전통예술을 사랑했던 박세재 선생이지만 막내딸이 춤을 추
진주시 금곡면에 표고버섯농장이 있다. 2016년 3월 귀농해 2년차에 억대 매출을 달성한 조승우 대표의 푸르미 농장이다. 조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전국을 다니며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부산6년, 순천5년, 인천 6년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생활해 학생시절 친구가 많이 없다.◇실패한 동업, 모든 것 잃어그는 장사를 하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를 해 자금을 모으고 경력도 쌓았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 술을 좋아하는 그가 음주운전사고를 낸 것이다. 모았던 돈은 합의금으로 나가고 본인 몸도 다쳤다. 치료 후 몸을